처음으로 머리카락이 한 움큼 빠져 손바닥에 얹혔던 날을 아직 기억한다. 항암 두 번째 주차쯤이었다. 미리 들어서 알고는 있었는데, 막상 베개에 검은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는 걸 보니 명치가 턱 막혔다. 아프지도 않은데 왜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아마 거울 속 내가 환자처럼 보이기 시작한 첫 순간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며칠 더 버티다가 결국 미용실에서 짧게 밀어버렸다. 한 가닥씩 빠지는 걸 매일 확인하는 게 더 견디기 힘들었다. 친한 디자이너 언니가 조용히 문을 닫아주고 잘라줬는데, 그 배려가 고마워서 또 울컥했다. 막상 밀고 나니 베개 청소도 줄고, 빠지는 걸 신경 쓰던 긴장도 한결 가벼워졌다. 미리 짧게 자르는 게 충격을 덜어준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그제야 알았다.

가발은 진단받고 얼마 안 됐을 때 미리 맞춰뒀다. 실제 머리색과 비슷하게 골랐고, 인모 가발이라 조금 비쌌지만 외출할 때 마음이 편했다. 다만 여름엔 더워서 오래 쓰기 힘들었고, 집에서는 그냥 비니나 면 두건을 둘렀다. 가발만 고집하기보다 상황에 맞춰 비니, 스카프, 모자를 번갈아 쓰니 훨씬 살 만했다. 두건 몇 장을 색깔별로 사두면 그날 기분 따라 고르는 소소한 재미도 있다.

의외로 신경 써야 했던 건 머리카락이 아니라 두피였다. 맨살이 드러나니 겨울엔 시리고 여름엔 햇볕에 쉽게 탔다. 자극이 적은 순한 세정제로 살살 닦고, 건조하면 향이 강하지 않은 보습제를 얇게 발랐다. 외출할 땐 두피에도 자외선차단제를 챙기거나 모자를 꼭 썼다. 베갯잇은 면처럼 부드러운 걸로 바꾸고 자주 빨았더니 가렵거나 따끔한 느낌도 줄었다.

가발이나 두건을 쓰는 동안에도 두피는 숨을 쉬어야 한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집에 있을 땐 되도록 벗어두고 바람을 쐬어줬고, 땀이 차면 그때그때 닦았다. 눈썹이랑 속눈썹까지 빠질 줄은 몰랐는데, 그건 가벼운 화장이나 눈썹 문신, 안경으로 가리며 지나갔다. 완벽하게 가리려 애쓰기보다 그냥 '지금은 이런 시기구나' 하고 받아들이니 마음이 편했다.

다행히 치료가 끝나고 몇 주 지나니 배냇머리 같은 솜털이 보송보송 올라왔다. 처음엔 곱슬거리고 색도 좀 달랐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제 모습을 찾아갔다. 그 짧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 끝나가는구나' 싶어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건 분명 서러운 일이지만, 끝이 있는 과정이라는 것만 붙잡아도 그 시기를 버티는 게 한결 수월했다.

이 글은 한 사람의 경험을 나눈 것으로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으며, 탈모 관리나 두피 트러블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은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