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가 해를 넘겨 이어지면 가족의 달력에는 '치료일'만 남고 그 밖의 날은 조용히 사라지기 쉽습니다. 그러다 모처럼 여행 이야기를 꺼냈을 때 환자가 "나는 안 갈래"라고 답하면, 남은 가족은 그 말을 단순한 거절이 아니라 자기 잘못처럼 받아들이곤 합니다. 먼저 떠나온 공항에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그러나 '안 간다'는 한마디 안에는 성격이 서로 다른 네 가지 사정이 섞여 있을 수 있고, 어느 쪽인지 가려 두어야 다음에 무엇을 제안할지 정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치료 일정입니다. 항암제는 대개 정해진 주기로 투여되고, 주사 뒤 며칠은 피로와 구역이 몰리는 구간, 이어지는 1~2주는 백혈구가 가장 낮아지는 구간(호중구감소, neutropenia)으로 넘어갑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한 주기 안에서 컨디션이 크게 달라지므로, '여행이 가능한가'보다 '주기 중 언제라면 가능한가'가 더 정확한 질문입니다. 여기에 채혈·영상검사·외래 예약이 겹치면 며칠을 비우는 일 자체가 치료를 미루는 결정이 되기도 합니다.

둘째는 몸의 사정입니다. 손발 저림(말초신경병증, peripheral neuropathy)이 있으면 오래 걷거나 낯선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부담이 되고, 설사나 잦은 배변이 있으면 화장실까지의 거리가 일정 전체를 좌우합니다. 림프부종(lymphedema), 더위와 추위에 대한 민감함, 식사량 감소, 장시간 비행에서 문제가 되는 혈전 위험(심부정맥혈전증, DVT)처럼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조건도 있습니다. 환자 본인은 이런 사정을 하나하나 설명하기보다 "괜찮다, 나는 됐다" 한마디로 줄여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셋째는 현실적인 부담입니다. 치료비와 생활비가 함께 나가는 상황에서 여행 비용은 쉽게 뒤로 밀리고, 가게나 일을 며칠 비우는 것도 간단하지 않습니다. 여행자보험은 이미 진단받은 질환과 관련된 사고를 보장에서 제외하는 경우가 흔해, 해외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의 부담을 미리 걱정하기도 합니다.

넷째는 마음입니다. 오래 돌봄을 받아 온 사람일수록 '내가 함께 가면 일정이 나 때문에 느려진다'고 생각하기 쉽고, 여행지에서 자신의 체력이 드러나는 것을 피하고 싶어 하기도 합니다. 이때의 거절은 여행이 싫다는 뜻이 아니라, 가족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표현에 가깝습니다.

다음 여행을 제안하기 전에 정리해 둘 순서는 이렇습니다. ① 담당 의료진에게 '주기 중 어느 시점이 비교적 안정적인지', '며칠까지 자리를 비워도 되는지'를 묻습니다. ② 필요한 약(진통제·항구토제·지사제 등)과 복용 방법, 영문 진단서나 소견서, 케모포트가 있다면 관리 방법을 함께 확인합니다. ③ 열이 났을 때 어디로 갈지 기준을 미리 정해 둡니다. 치료 중 38도 이상의 발열은 응급 상황으로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④ 이동 시간, 화장실까지의 거리, 하루에 걷는 양, 쉬는 시간을 미리 넣어 규모를 줄인 일정으로 제안합니다. 해외 대신 가까운 곳, 일주일 대신 하루나 이틀도 충분히 여행이 됩니다.

혼자 떠나온 가족이 느끼는 죄책감도 함께 다뤄야 할 문제입니다. 돌보는 사람이 쉬는 시간을 갖는 것은 돌봄을 중단하는 일이 아니라 돌봄을 오래 이어 가기 위한 조건에 가깝습니다. 잠들기 어렵고 입맛이 없고 무엇에도 집중되지 않는 상태가 2주 이상 이어진다면, 암센터의 상담 부서나 정신건강 진료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것이며 개별 진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여행 가능 여부, 약의 조정, 검사 일정 변경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해 결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