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날짜가 정해지고 나면 입원 준비물보다 늦게까지 정리되지 않는 것이 '늘 먹던 약'입니다. 하루도 거르지 말라고 배운 혈압약과, 소변 줄기가 약해져 시작한 전립선비대증 약이 같은 약봉투에 담겨 있으면 '다 끊어야 하나, 다 먹어야 하나'라는 이분법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수술 전 복약은 약을 통째로 세우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성분마다 다른 축 위에서 하나씩 결정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같은 사람이 먹는 다섯 알이 '넷은 그대로, 하나는 이틀 전부터 중단'처럼 갈라지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첫 번째 축은 '끊었을 때 생기는 위험'입니다. 오래 복용해 온 베타차단제(beta-blocker) 계열 혈압약처럼, 갑자기 중단하면 맥박과 혈압이 오히려 튀어 오르는 반동 현상이 알려져 있는 약들이 있습니다. 이런 약은 대개 수술 당일 아침까지 이어 가도록 안내되는 편입니다. 임의로 며칠 전부터 약을 세워 두었다가 수술 전날 혈압이 잡히지 않아 일정이 밀리는 경우도 있어, '안전할 것 같아서 미리 끊었다'가 가장 피해야 할 선택으로 꼽힙니다.
두 번째 축은 '마취 중 몸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안지오텐신 전환효소 억제제(ACE inhibitor)나 안지오텐신 수용체 차단제(ARB) 계열은 마취를 시작하는 시점에 혈압이 과도하게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병원에 따라 수술 당일 아침 한 회를 거르도록 안내하기도 합니다. 이뇨제(diuretic)는 탈수와 전해질 변화 때문에, 당뇨약 중 일부 계열은 대사성 합병증 때문에 수술 며칠 전부터 조정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내 약이 어느 계열인지'가 먼저이지, 약 이름이나 알약 색으로는 갈리지 않습니다.
세 번째 축은 '무슨 수술을 받는가'입니다. 전립선비대증에 쓰이는 알파차단제(alpha-blocker) 계열은 눈 수술, 특히 백내장 수술에서 홍채가 물결처럼 흔들리는 현상(수술 중 이완성 홍채 증후군, IFIS)과의 연관이 보고되어 있어, 안과 수술을 앞두었다면 과거에 복용했던 이력까지 미리 알리는 것이 권해집니다. 반면 일반적인 복부·정형외과 수술에서는 계속 복용하도록 안내되는 경우가 많고, 다만 혈압약과 겹쳐 어지럼이나 기립 시 혈압 저하가 도드라질 수 있다는 점이 함께 고려됩니다. 여기에 아스피린이나 항응고제처럼 출혈과 직접 얽히는 약, 그리고 한약·건강기능식품·비타민 보충제는 별도의 축으로 따로 확인이 필요합니다.
진료실에 가져갈 순서는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약봉투와 처방전을 그대로 챙기거나 사진을 찍어 '성분명·용량·먹는 시각'이 보이도록 목록을 만듭니다. 처방전이 없다면 약국에서 복약 목록을 뽑아 둘 수 있습니다. 둘째, 수술 전 마취과 상담(수술 전 평가) 일정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약 목록 전체를 한 번에 보여 줍니다. 셋째, 약마다 '유지'인지 '중단'인지, 중단이라면 며칠 전부터인지, 유지라면 금식 중 물 몇 모금과 함께 먹어도 되는지를 각각 확인해 적어 둡니다. 넷째, 혈압약과 전립선약을 처방한 곳과 수술을 하는 곳이 다르다면 최종 판단을 어느 쪽에서 하는지 물어 둡니다. 다섯째, 수술 후 언제부터 원래대로 돌아가는지까지 미리 물어 두면, 퇴원 직후 다시 헤매는 일을 줄일 수 있습니다.
수술이 며칠 남지 않았다면 판단을 미루기보다 담당 부서에 전화로 먼저 확인하는 편이 낫습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를 정리한 것이며 개별 진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복용 중인 약을 유지할지 중단할지는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해 결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