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분을 병으로 떠나보낸 뒤, 어떤 사람은 장례 절차보다 한 문장을 더 오래 붙들고 삽니다. 의식이 흐려져 가는 분의 귀에 대고 "꼭 낫게 해드릴게, 다 나으면 같이 집에 가자"라고 속삭였던 말입니다. 그 말은 그 순간 할 수 있는 가장 진심 어린 말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키지 못한 약속'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되돌아와 오래도록 자책이 되기도 합니다.

왜 이 문장이 유독 오래 남을까요. 사람의 마음은 큰 상실 앞에서 '내가 무엇을 달리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를 반복해서 계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되새김을 반추(rumination), 그 속의 가정을 사후가정사고(counterfactual thinking)라고 부릅니다. 이는 통제할 수 없었던 일에서 통제감을 되찾으려는 마음의 작동 방식에 가깝고, 실제 인과관계를 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암의 경과는 종류와 병기(stage), 진단 시점의 전신 상태, 치료에 대한 반응처럼 개인의 의지나 간병의 정성으로 좌우되지 않는 요소들에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더 일찍 알아채지 못한 것, 더 좋은 곳에 모시지 못한 것을 두고 스스로를 심판대에 세우는 일은 무척 흔하지만, 그 심판의 무게는 대개 근거가 아니라 사랑의 크기에 비례합니다.

임종을 앞둔 분 곁에서 건넨 말이 정말 닿았을지 궁금해하는 분도 많습니다. 임상에서는 의식이 저하된 환자에게도 청각이 비교적 늦게까지 유지될 수 있다고 보아, 곁에서 이름을 부르고 편안한 말을 건네도록 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부분은 확실하게 증명하기 어려운 영역이지만, 적어도 "말해 봐야 소용없었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손주가 조부모를 떠나보낸 경우처럼, 상실의 크기에 비해 슬픔을 드러낼 자리가 좁은 관계도 있습니다. 실제로 자신을 키워 준 분이었는데도 장례에서는 주된 상주가 아니고, 직장에서 쓸 수 있는 휴가는 짧고, 주변에서는 "연세가 있으셨으니까"라는 말이 돌아옵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슬픔을 인정받지 못한 애도(disenfranchised grief)라고 부릅니다. 슬픔이 과한 것이 아니라, 슬퍼할 공간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애도에는 정해진 시간표가 없습니다. 몇 달 동안 눈물, 불면, 집중력 저하, 식욕 변화가 오르내리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고, 좀 나아졌다 싶다가 기일이나 명절에 다시 밀려오기도 합니다. 다만 사별 후 1년 가까이 지나도 그리움과 자책이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해 일상·직장·관계가 무너져 있거나, 술이나 수면제에 기대는 시간이 늘거나, "내가 벌을 받아야 한다",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하다는 신호입니다. 오래 지속되는 심한 비탄은 지속성 비탄장애(prolonged grief disorder)나 우울증의 관점에서 평가되고 치료될 수 있습니다.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으로는 정신건강의학과와 심리상담, 거주지의 정신건강복지센터, 치료를 받던 병원의 완화의료·호스피스팀이 운영하는 사별가족 지원 프로그램, 사별 자조모임 등이 있습니다. 고인이 호스피스를 이용하지 않았더라도 지역에 따라 안내를 받을 수 있으니 한 번 문의해 볼 만합니다.

스스로 해볼 수 있는 일도 있습니다. 못다 한 말을 편지로 계속 써 내려가는 것은 고인과의 관계를 억지로 끊어 내는 대신 형태를 바꿔 이어 가는 방식(continuing bonds)으로 이해되며, 애도의 자연스러운 한 과정으로 봅니다. 기일이나 생신처럼 힘들 것이 예상되는 날은 미리 계획을 세워 혼자 있지 않도록 하는 편이 낫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한 번 다시 번역해 보시기 바랍니다. "꼭 낫게 해줄게"는 의학적 보증이 아니라 "당신을 잃고 싶지 않다"는 사랑의 문장이었습니다. 지키지 못한 것은 약속이 아니라, 애초에 사람의 손에 쥐어져 있지 않았던 일입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것으로 개별 진료나 상담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몸이나 마음의 증상이 지속되거나 심해질 때는 반드시 의료진 또는 전문 상담자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