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된 암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밤에만 잠깐 보이던 혼란이 어느 날부터 낮까지 이어지는 일이 있습니다. 시간과 장소를 혼동하고, 병원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곁을 지키는 가족이나 의료진을 의심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태를 섬망(delirium)이라고 부릅니다. 이때 의료진이 가장 먼저 살피는 것 가운데 하나가 '지금 쓰고 있는 약'입니다. 마약성 진통제(opioid)를 조정하거나 붙이고 있던 패치를 떼어 보자는 제안을 듣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섬망은 원인이 하나뿐인 경우가 드뭅니다. 탈수와 감염, 전해질 이상(특히 고칼슘혈증·저나트륨혈증), 콩팥·간 기능이 떨어지면서 생기는 약물 축적, 변비나 소변 정체, 산소 부족, 수면 리듬의 붕괴가 서로 겹쳐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병동에서는 피검사와 소변량, 배변 기록, 체온, 산소포화도를 함께 확인하며 '되돌릴 수 있는 원인(reversible cause)'이 남아 있는지 하나씩 지웁니다. 약을 줄이는 것은 그 여러 갈래 가운데 하나일 뿐, 그것만으로 모든 혼란이 사라진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마약성 진통제가 섬망에 관여하는 방식은 '용량이 많아서'만은 아닙니다. 몸에서 약이 분해되며 생기는 대사산물이 콩팥 기능이 떨어진 상태에서 잘 빠져나가지 못하고 쌓이면, 졸림·헛것이 보임·근육의 갑작스러운 씰룩임 같은 반응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를 오피오이드 유발 신경독성(opioid-induced neurotoxicity)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대개의 선택은 '끊기'가 아니라 '바꾸기'입니다. 같은 계열의 다른 약으로 옮기는 오피오이드 전환(opioid rotation)을 하면서, 환산표상의 등가용량보다 조금 낮게 시작해 반응을 보는 방식이 흔히 쓰입니다.
붙이는 패치를 뗀 날 통증이 곧바로 달라지지 않거나, 반대로 하루 지나 통증이 되살아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피부에 스며든 약은 패치를 제거한 뒤에도 한동안 서서히 흡수되기 때문에, 효과가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먹는 서방형 약과 필요할 때 쓰는 속효성 구제약(rescue medication)을 함께 쓰며 조절합니다. 밤에 통증이 더 심하게 느껴지는 것은 낮 동안의 활동과 대화가 주의를 분산시켜 주지 못하고, 자세와 약효 간격이 겹치며, 섬망 자체가 통증을 표현하는 방식을 바꾸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가족이 할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인 일은 '기록'입니다. 몇 시에 혼란이 시작되어 몇 시에 가라앉았는지, 구제약을 하루 몇 번 썼는지, 잠은 몇 시간 잤는지, 대변과 소변은 어땠는지, 열이 있었는지를 한 장에 시간순으로 적어 두면, 회진 때 '밤에 힘들었어요'보다 훨씬 많은 정보가 전달됩니다. 약을 올릴지 내릴지, 다른 약으로 바꿀지를 정하는 판단이 결국 이 기록 위에서 이뤄집니다.
약이 아닌 방법도 함께 씁니다. 낮에는 커튼을 열어 빛을 들이고 말을 걸며 깨어 있는 시간을 만들고, 밤에는 소음과 조명을 줄입니다. 안경과 보청기를 쓰던 분이라면 낮 동안 착용하게 하고, 시계와 달력, 집에서 쓰던 익숙한 물건을 눈에 보이는 곳에 두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억제대는 낙상과 관을 뽑는 사고를 막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가 있지만 혼란을 키우는 쪽으로 작용하기도 해, 필요한 최소한으로 쓰고 자주 다시 판단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잠들기 전 멜라토닌이나 상황에 따라 쓰는 항정신병약은 증상의 강도를 낮추려는 목적이며, 섬망 자체를 없애는 약은 아닙니다.
섬망이 언제 끝나는지는 미리 말하기 어렵습니다. 감염이나 탈수, 약물처럼 교정 가능한 요인이 컸다면 며칠 사이 눈에 띄게 맑아지기도 하고, 병이 진행하는 시기에 겹쳐 왔다면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며 길게 이어지기도 합니다. 하루 안에서도 아침에는 대화가 되다가 해 질 무렵 다시 흐려지는 기복이 섬망의 특징이라는 점을 알아두면, '어제는 괜찮았는데 오늘은 왜'라는 자책을 조금은 덜 수 있습니다.
밤을 지키는 사람의 몸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한 사람에게 밤이 몰리기 시작하면 몇 주를 버티기 어렵습니다. 병동에 야간 상황과 가정 사정을 구체적으로 알리고, 교대 방식이나 간병 지원, 의료사회복지팀 상담을 요청해 볼 수 있습니다. 아픈 부모 곁을 지키는 일과 어린 자녀를 돌보는 일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충분하지 못하다는 죄책감이 드는 것은 이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매우 흔한 감정이며, 돌보는 사람이 무너지면 환자의 돌봄도 함께 흔들린다는 점에서 도움을 청하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치료의 일부에 가깝습니다.
다만 갑작스러운 고열, 소변량이 뚜렷하게 줄어드는 경우, 숨쉬는 양상이 달라지거나 한쪽 팔다리에 힘이 빠지는 등 새로운 신경 증상이 보일 때는 섬망 조절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응급 상황일 수 있으므로, 밤이라도 담당 의료진에게 바로 알리는 것이 안전합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를 전하기 위한 것이며 개별 환자의 진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사용 중인 진통제의 용량 조정이나 중단, 수면제·항정신병약 사용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해 결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