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 생기는 암이라고 하면 흔히 백혈병 하나만 떠올리는 분이 많다. 근데 막상 진단명을 받아 들면 림프종이니 다발골수종이니,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 줄줄이 나온다. 셋 다 혈액암이라는 큰 우산 아래 묶이긴 하는데, 사실 시작하는 자리도 다르고 굴러가는 방식도 제법 다르다. 한 번 정리해 두면 진료실에서 의사 설명을 들을 때 훨씬 덜 막막하다.
우리 몸의 피는 골수라는 뼛속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거기서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이 나오는데, 이 셋을 만드는 과정 어디쯤에서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자라기 시작하면 혈액암이 된다. 백혈병은 바로 이 골수 단계에서, 주로 백혈구를 만드는 세포가 통제를 잃고 폭발적으로 불어나는 병이다. 미숙한 세포들이 골수를 가득 채워 버리니 정작 멀쩡한 피가 안 만들어진다. 그래서 쉽게 멍들고, 자주 피곤하고, 사소한 감염에도 끙끙 앓게 되는 거다. 급성과 만성으로 나뉘는데, 급성은 말 그대로 빠르게 치고 들어와서 진단이 떨어지면 바로 치료에 들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림프종은 무대가 조금 다르다. 백혈구 중에서도 림프구라는 면역세포가 주인공인데, 이게 혈액을 타고 온몸을 돌다가 림프절이라는 정거장에 모인다. 목, 겨드랑이, 사타구니에 콩알처럼 만져지는 그 덩어리 말이다. 림프종은 이 림프절이나 림프조직 안에서 암세포가 자라 덩어리를 만든다. 그래서 백혈병이 '피 속을 떠다니는' 그림이라면, 림프종은 '한 곳에 뭉쳐 자라는' 그림에 가깝다. 목에 안 아픈 멍울이 생겨 한참 가도 안 빠진다거나, 까닭 없이 밤에 식은땀을 쏟고 체중이 훅 빠지면 한 번쯤 의심해 볼 만한 신호다. 크게 호지킨과 비호지킨으로 갈리는데, 종류가 워낙 많아서 같은 림프종이라도 경과가 천차만별이다.
다발골수종은 셋 중에 제일 낯설게 들리는 이름일 거다. 이건 형질세포라는 또 다른 면역세포가 골수 안에서 비정상적으로 늘어나는 병이다. 형질세포는 원래 항체를 만드는 일꾼인데, 암이 되면 쓸모없는 단백질만 잔뜩 찍어 내면서 골수를 망가뜨린다. 특이하게도 뼈를 갉아먹는 식으로 진행돼서, 영문 모를 허리 통증이나 갈비뼈 통증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흔하다. 별것 아닌 충격에 뼈가 부러지거나, 피검사에서 칼슘 수치나 신장 기능에 이상이 잡히면서 발견되기도 한다. '다발'이라는 말이 붙은 건 뼈 여러 군데에 동시다발로 병변이 생긴다는 뜻이라고 보면 된다.
정리하면 이렇다. 백혈병은 골수에서 백혈구 만드는 길이 어그러진 것, 림프종은 림프구가 림프절에 뭉쳐 자라는 것, 다발골수종은 형질세포가 골수에서 뼈를 무너뜨리며 늘어나는 것. 셋 다 결국은 백혈구 계통에서 갈라져 나온 사촌지간 같은 병이지만, 출발점과 주된 증상이 다르니 검사도 치료도 따로 간다. 그러니 같은 혈액암이라는 말만 듣고 옆 사람 사례를 내 경우에 그대로 대입하지 않는 게 좋다.
몸에서 평소와 다른 신호가 길게 이어진다면 미루지 말고 진료를 받아보길. 이 글은 이해를 돕기 위한 정보일 뿐이고, 정확한 진단과 치료 방향은 꼭 담당 의사와 상의해서 정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