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나 혀 뿌리 쪽, 그러니까 입 안 깊숙한 목구멍 언저리에 생기는 암을 구인두암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같은 자리에 생긴 암이라도 환자마다 경과가 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치료를 마치고 오래도록 별 탈 없이 지내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같은 병기인데도 더 까다로운 길을 걷는다. 이 차이를 가르는 큰 갈림길 하나가 바로 'HPV 바이러스가 관여했느냐'다.
HPV는 흔히 자궁경부암을 떠올리게 하는 바이러스인데, 사실 목 안쪽 점막에도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술·담배를 오래 한 흔적이 깊은 전통적인 구인두암과 달리, HPV가 원인이 된 암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담배를 거의 안 피운 사람에게서도 발견되곤 한다. 처음엔 목에 멍울이 만져져서 병원을 찾았다가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겉으로 드러나는 인상만으로는 구분이 잘 안 되니, 조직검사 후 HPV 관련 표지자를 확인하는 과정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예후만 놓고 보면, 같은 병기일 때 HPV가 양성인 쪽이 치료 반응도 좋고 장기 생존 성적도 더 나은 편으로 알려져 있다. 암 자체의 성질이 달라서 항암·방사선 치료에 더 잘 반응한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그래서 병기 분류 기준도 이 둘을 아예 나눠서 매기도록 바뀌었다. 똑같은 'T3'라는 표기여도 바이러스 여부에 따라 위치가 달라진다는 뜻인데, 막상 환자 입장에서 보면 "내 병기 숫자가 같은데 왜 설명이 다르지?" 하고 헷갈릴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양성이면 안심, 음성이면 절망'으로 단순하게 줄여 생각하면 곤란하다. HPV 양성이라도 흡연 이력이 길게 겹치면 그 이점이 줄어든다는 점이 자주 지적된다. 반대로 음성 종양이어도 조기에 발견해 제대로 치료하면 결과가 좋은 사람도 분명히 있다. 통계는 큰 흐름을 말해줄 뿐, 내 앞에 놓인 한 사람의 경과를 정해주는 게 아니다. 그래서 요즘은 치료 강도를 무작정 세게 가기보다, HPV 양성이면서 위험 요인이 적은 사람에게는 부작용을 줄이는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연구들이 이어지고 있다.
결국 환자가 챙겨야 할 건 의외로 단순하다. 내 암이 HPV와 관련된 것인지, 그리고 흡연 같은 다른 위험 요인이 얼마나 겹치는지를 주치의에게 분명히 확인하는 일이다. 같은 진단명을 받았더라도 이 두 가지에 따라 치료 계획과 회복 그림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목에 까닭 없이 멍울이 잡히거나 한쪽 편도만 자꾸 부어 있는 느낌이 몇 주씩 이어진다면 그냥 넘기지 말고 한 번쯤 진료를 받아보길.
여기 적은 내용은 이해를 돕기 위한 일반적인 정보일 뿐이고, 실제 진단과 치료는 꼭 담당 의료진과 상의해서 정하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