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소암 수술을 받고 나면 한동안 배가 영 내 것 같지가 않다. 가스가 차서 더부룩하고, 막상 죽 한 술 떠넣어도 명치가 묵직하게 막힌 느낌이 가시질 않는다. 수술 과정에서 배를 열고 장을 만지게 되면 장이 한동안 '파업'에 들어가는데, 의학적으로는 이걸 장마비라고 부른다. 길게 누워 있던 장이 다시 꿈틀거리며 일을 시작하기까지는 사람마다 며칠이 걸린다. 그래서 회복기 식사의 첫 번째 목표는 영양을 잔뜩 채우는 게 아니라, 잠든 장을 살살 깨우는 쪽에 가깝다.
병동에서 보통 물부터 시작해 미음, 죽, 진밥으로 단계를 올린다. 이 순서가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사실 이유가 있다. 아직 덜 깨어난 장에 갑자기 거칠고 기름진 음식이 들어가면 통증이나 구역, 심하면 토하는 일까지 생긴다. 가스가 한 번 시원하게 나왔다는 건 장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반가운 신호다. 그 신호가 온 뒤에 조금씩 끼니의 농도를 올려가는 게 몸에 무리가 덜 간다. 한 끼에 욕심내기보다 양은 줄이고 횟수를 늘리는 편이 낫다. 하루 세 끼를 고집하지 말고 적은 양을 다섯, 여섯 번 나눠 먹으면 장도 덜 놀란다.
그럼 뭘 먹으면 부드럽게 넘어갈까. 흰죽이나 부드럽게 끓인 채소죽, 으깬 감자, 푹 익힌 호박, 두부, 흰살생선 살을 곱게 발라낸 것 정도가 초반엔 편하다. 달걀은 반숙보다 완전히 익혀 부드럽게, 바나나처럼 무른 과일도 괜찮다. 반대로 회복 초반에 피하면 좋은 건 식이섬유가 거칠게 살아 있는 생채소·잡곡, 콩류, 양배추나 브로콜리처럼 가스를 많이 만드는 것들, 그리고 튀김·기름진 고기·매운 양념이다. 이건 '평생 먹지 마라'가 아니라 장이 제대로 돌아오기 전까지만 잠깐 쉬어가자는 얘기다. 회복이 진행되면 통곡물과 채소는 오히려 변비를 막아주는 든든한 아군이 된다.
수술 뒤 변비로 고생하는 분이 의외로 많다. 진통제 중에 장 움직임을 늦추는 성분이 있고, 활동량까지 줄어드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식이섬유를 잔뜩 욱여넣으면 가스만 더 차서 역효과가 난다. 물을 자주 조금씩 마시고, 컨디션이 허락하는 만큼 병실 복도를 천천히 걷는 게 약보다 먼저다. 걷는 움직임 자체가 장을 흔들어 깨운다. 며칠이 지나도 가스나 변이 영 안 나오고 배가 점점 빵빵하게 부풀거나, 토하거나, 열이 난다면 혼자 참지 말고 바로 의료진에게 알려야 한다. 단순한 더부룩함과 진짜 문제는 결이 다르다.
퇴원하고 집밥으로 돌아오면 또 한 번 막막해진다. 입맛은 없는데 살은 빠지고, 항암치료까지 겹치면 메슥거려서 수저 들기가 싫어진다. 이럴 땐 한 번에 잘 차린 상보다 곁에 두고 자주 집어먹을 만한 것들이 현실적이다. 미지근하게 식힌 음식이 뜨겁거나 향이 강한 것보다 덜 부담스럽고, 단백질이 부담되면 부드러운 두부나 달걀, 죽에 생선살을 풀어 조금씩 채워가면 된다. 며칠 잘 못 먹는 날이 있어도 너무 자책하지 말자. 어떤 날은 몇 술이 전부여도 괜찮다. 장이 깨어나는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회복도 그렇게 들쭉날쭉 제 박자로 온다.
이 글은 일반적인 회복기 식사 이야기를 정리한 것일 뿐이라, 본인 수술 범위나 치료 상황에 맞는 식단은 담당 의료진·영양팀과 꼭 상의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