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끝자락이면 김치를 새로 담그고 나물을 무치고 국을 한 솥 끓여 냉장고를 채워 두는 집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밥상을 함께 받는 사람 중에 항암치료를 받고 있거나 수술에서 회복 중인 가족이 있다면, 같은 반찬이라도 몸이 받아들이는 조건이 조금 달라집니다. 이것은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을 골라내는 문제라기보다, 같은 음식을 언제·얼마나·어떤 상태로 올리느냐가 갈리는 문제에 가깝습니다.

첫째 축은 면역 상태입니다. 항암제를 맞은 뒤 대개 7~14일 사이에 백혈구, 그중에서도 호중구(neutrophil)가 가장 낮아지는 시기가 옵니다. 이 시기에는 충분히 익지 않은 겉절이 김치, 젓갈이 많이 들어간 반찬, 생채소 무침처럼 가열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음식이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과거처럼 모든 생것을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이른바 저균식(neutropenic diet)의 이득이 뚜렷하지 않다는 연구 보고가 이어지면서, 최근에는 엄격한 금지보다 손 위생·조리 온도·보관 같은 기본 식품안전 수칙을 지키는 쪽이 더 강조되는 추세입니다. 기관과 치료 종류에 따라 안내가 다르므로, 담당 의료진이 준 지침이 있으면 그것이 우선입니다.

둘째 축은 나트륨과 자극입니다. 김치, 장아찌, 국물 요리는 한국 밥상에서 단백질과 입맛을 살려 주는 자리이지만 동시에 소금이 몰리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부종이 있거나 복수가 차는 경우, 스테로이드를 함께 쓰는 경우, 신장·심장 기능이 떨어져 있는 경우에는 하루 총량을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반대로 치료로 입맛이 떨어져 있을 때는 짠맛과 신맛이 식사량을 끌어올려 주기도 합니다. 어느 쪽인지는 사람마다 다르므로, 국물을 얼마나 남기는지 정도만 정해 두어도 실전에서는 충분한 조절이 됩니다.

셋째 축은 여름철 보관입니다. 폭염에는 조리한 음식이 상온에 놓이는 시간 자체가 위험 요인이 됩니다. 한 솥 끓인 국을 그대로 식혀 두었다가 며칠에 걸쳐 데워 먹는 방식은 여름에 가장 흔한 실수입니다. 조리 후 되도록 빨리 소분해 냉장 또는 냉동하고, 먹을 만큼만 꺼내 충분히 끓여 내는 편이 안전합니다. 나물류는 조리 뒤 오래 실온에 두면 독소를 만드는 균이 자랄 수 있어 특히 주의가 필요합니다. 용기에 만든 날짜를 적어 두는 습관 하나가, 면역이 떨어진 사람에게는 생각보다 큰 안전장치가 됩니다.

넷째 축은 소화관의 현재 상태입니다. 위를 일부 또는 전부 절제한 뒤에는 질기고 섬유가 많은 나물이 한 번에 많이 들어가면 부담이 됩니다. 장 수술을 받았거나 배변이 잦은 시기에는 매운 양념과 강한 산미가 증상을 키울 수 있고, 구내염이 있는 시기에는 같은 김치라도 통증의 원인이 됩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주기 초반과 후반이 다르기 때문에, 반찬은 '되는 것/안 되는 것'이 아니라 '이번 주에 맞는 것'으로 두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한 상을 다시 놓는 순서는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① 오늘이 이번 항암 주기의 며칠째인지 적어 둡니다. ② 최근 혈액검사에서 백혈구·호중구 수치가 어땠는지 확인합니다. ③ 새로 담근 김치와 무침은 익힘 정도에 따라 나누고, 가열해서 낼 몫을 따로 둡니다. ④ 국과 반찬은 한 끼 분량으로 소분해 날짜를 적어 냉장·냉동합니다. ⑤ 짠 국물과 매운 양념은 덜어 낼 수 있게 따로 담습니다. ⑥ 다음 외래에서 나트륨 제한이 필요한지, 이번 치료에서 생식과 관련해 지켜야 할 지침이 있는지 한 줄로 물어봅니다.

다만 38도 이상의 열, 오한, 멈추지 않는 설사나 구토, 갑작스러운 복통, 며칠 사이의 뚜렷한 체중 감소가 있다면 식단 조절의 문제가 아니라 즉시 연락하고 진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특히 호중구가 낮은 시기의 발열은 응급 상황으로 다루어집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를 정리한 것으로 개인의 진단이나 진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실제 식사 방침은 치료 종류, 수술 범위, 혈액검사 결과, 신장·심장 상태에 따라 달라지므로 담당 의료진 및 영양팀과 상의해 결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