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뒤, 같은 병을 지나온 사람들끼리 ‘이건 먹자마자 화장실로 갔다’는 목록을 주고받는 일은 흔합니다. 사골국, 치즈, 당면, 케이크, 냉면, 기름진 고기, 고구마 줄기처럼 서로 닮은 데가 하나도 없어 보이는 음식들이 한 줄에 나란히 적히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목록을 그대로 받아 식탁에서 지웠는데도 설사가 줄지 않거나, 반대로 목록에 없던 음식에서 탈이 나는 일이 자주 생깁니다. 문제를 만드는 것은 음식의 ‘이름’이 아니라 그 음식이 내 몸에서 건드리는 ‘축’이고, 그 축은 어디를 얼마나 덜어냈는지에 따라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직장이나 대장의 일부를 덜어낸 몸에서는 대체로 세 가지가 함께 달라집니다. 첫째, 대변을 잠시 모아 두던 공간이 줄어 조금만 차도 신호가 옵니다. 둘째, 내용물이 지나가는 속도가 빨라져 물이 충분히 흡수되기 전에 내려옵니다. 셋째, 수술 부위 주변의 신경과 항문 조임근의 협응이 예전 같지 않아 ‘참는 힘’이 줄어듭니다. 여기에 회장(작은창자 끝, ileum) 일부를 함께 절제했다면 담즙산(bile acid)이 되흡수되지 않고 대장을 자극해 물기 많은 변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변화가 겹쳐 나타나는 상태를 저위전방절제증후군(LARS)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부르기도 합니다.
첫 번째 축은 지방입니다. 사골국, 기름진 고기, 생크림이 두껍게 올라간 케이크는 이름이 전혀 다르지만 한 끼에 들어가는 지방의 양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지방은 소화에 담즙이 더 많이 필요하고, 흡수되지 않고 남은 지방은 대장에서 물을 끌어와 변을 묽게 만듭니다. 담즙산 문제가 있는 경우라면 기름진 한 끼 뒤 30분에서 두 시간 사이에 급하게 신호가 오는 패턴이 반복되기도 합니다.
두 번째 축은 유당(lactose)입니다. 다만 치즈라고 다 같지는 않습니다. 오래 숙성한 단단한 치즈는 유당이 많이 남아 있지 않아 유당 자체보다 지방이 걸리는 경우가 많고, 우유·생크림·아이스크림·연질 치즈 쪽이 유당 부담이 큽니다. 수술이나 항암치료 뒤 장 점막이 회복되는 동안 유당을 분해하는 효소가 일시적으로 줄어드는 일도 있어서,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던 우유가 한동안만 문제가 되었다가 다시 괜찮아지기도 합니다.
세 번째 축은 온도와 속도입니다. 냉면 한 그릇에는 찬 국물, 한 번에 들어가는 많은 양, 빠른 식사 속도, 매콤한 양념, 식초와 겨자까지 여러 요소가 한꺼번에 들어 있습니다. 그중 무엇이 걸렸는지 구분하지 않으면 ‘냉면은 금지’라는 결론만 남습니다. 실제로는 찬 것만 피하면 되는 사람도 있고, 양념이 문제인 사람도 있습니다.
네 번째 축은 섬유와 발효되는 당입니다. 고구마 줄기나 나물 줄기, 버섯 기둥처럼 질긴 불용성 섬유는 씹어 잘게 부수기 어려워 그대로 내려가며 자극이 됩니다. 반대로 당면은 정제된 전분이라 그 자체로는 대체로 무난한 편인데, 잡채로 먹으면 기름과 간이 함께 들어옵니다. 케이크에는 지방과 설탕이 같이 있고, 무설탕 제품이라면 소르비톨·말티톨 같은 당알코올이 설사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목록을 지우는 대신 한 가지씩 다시 시험해 보는 편이 남는 것이 많습니다. 순서는 이렇습니다. 첫째, 며칠간 비교적 안전했던 기본 식단을 정해 바닥을 만듭니다. 둘째, 시험할 음식을 하나만 고르고 평소의 절반 이하 양으로, 다른 새 음식 없이 낮 시간에 먹습니다. 셋째, 그날과 다음 날의 배변을 횟수만이 아니라 시간·형태(브리스톨 척도가 편합니다)·긴박감·야간 배변 유무로 적습니다. 넷째, 이상이 없으면 2~3일 뒤 양을 늘려 한 번 더 확인하고, 반응이 있으면 조리법을 바꿔(기름 빼고 삶기, 찬 것 대신 미지근하게, 곱게 다지기) 다시 시험합니다. 이렇게 하면 ‘음식’이 아니라 ‘양·온도·조리법’이 문제였다는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한편, 설사가 음식과 무관한 자리에서 오는 경우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항암제 중에는 설사가 흔한 약이 있고, 항생제를 쓴 뒤 장내 세균 균형이 깨져 감염성 설사가 생기기도 합니다. 담즙산 때문이라면 식단 조절보다 약으로 좋아지는 경우가 있어 원인을 가려 보는 것이 먼저입니다. 변비로 굳은 변 옆으로 물변만 새어 나오는 ‘넘침 설사’도 겉보기에는 설사와 같아 보입니다. 열이 나거나, 변에 피가 섞이거나 검은 변이 나올 때, 하루 배변 횟수가 갑자기 크게 늘 때, 어지럽고 소변량이 줄 때(탈수), 배가 심하게 아프고 부르며 토할 때는 식단을 조정할 자리가 아니라 바로 의료진에게 알려야 하는 상황입니다.
진료실에 갈 때는 목록 대신 기록을 가져가는 편이 이야기가 빨리 진행됩니다. 최근 2주의 배변 횟수와 형태, 문제가 반복된 음식과 그때의 양·온도·조리법, 지금 먹고 있는 약과 영양제, 체중 변화, 하루 수분 섭취량 정도면 충분합니다. 다른 사람의 목록은 시험해 볼 후보를 알려 줄 뿐, 그대로 내 금지 목록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것으로 개별 진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증상과 식단 조절 방법은 수술 범위와 치료 내용에 따라 달라지므로, 실제 결정은 담당 의료진 및 영양사와 상의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