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수술을 마치고 처음 받는 추적검사에서는 영상과 종양표지자에 시선이 쏠리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췌장의 일부를 함께 절제한 분들은 검사가 무사히 지나간 뒤에도 혈액검사지 한구석에 남은 숫자 하나가 마음에 걸립니다. 당화혈색소(HbA1c)입니다. 수술 전에는 정상 범위였는데 어느새 7%대에 올라와 있다면, 이는 관리를 소홀히 한 결과라기보다 장기의 일부가 사라진 몸에서 충분히 예상되는 변화일 수 있습니다.
췌장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합니다. 하나는 음식을 분해하는 소화효소를 장으로 내보내는 외분비(exocrine) 기능이고, 다른 하나는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을 혈액으로 내보내는 내분비(endocrine) 기능입니다. 절제 범위가 커질수록 두 기능이 함께 줄어듭니다. 그래서 췌장 수술 뒤 생기는 당뇨는 흔히 말하는 2형 당뇨와 같은 칸에 넣기 어렵고, 의학에서는 3c형 당뇨(type 3c diabetes) 또는 췌장성 당뇨(pancreatogenic diabetes)라고 따로 구분해 부릅니다.
가장 큰 차이는 '혈당을 올리는 쪽'도 함께 약해진다는 점입니다. 췌장은 인슐린(insulin)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혈당이 떨어질 때 이를 끌어올리는 글루카곤(glucagon)도 만듭니다. 두 호르몬이 나란히 부족해지면 혈당이 위로도 아래로도 쉽게 흔들립니다. 식후에는 빠르게 오르고, 약을 조금 세게 쓰거나 식사를 거르면 예상보다 깊게 떨어지며, 떨어진 뒤 스스로 회복하는 힘도 약해집니다. 같은 당화혈색소 7.4라도 이런 몸에서는 '조금 높은 상태가 꾸준했다'는 뜻일 수도, '높은 날과 낮은 날이 번갈아 지나갔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목표 숫자를 혼자 정하지 않는 편이 안전합니다. 수술 전의 숫자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저혈당 위험이 큰 몸에서는 지나치게 낮은 목표가 오히려 위험을 키울 수 있습니다. 진료실에서 물어볼 말은 '몇까지 낮춰야 하나요'보다 '저혈당 없이 닿을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요'에 가깝습니다. 또한 당화혈색소는 지난 두세 달의 평균을 반영하는 지표라서, 빈혈이 있거나 항암치료·수혈을 거친 뒤에는 실제 혈당과 어긋나기도 합니다. 자가혈당측정 기록이나 연속혈당측정(CGM) 자료가 함께 있으면 판단이 훨씬 수월해집니다.
혈당만큼 자주 놓치는 것이 소화 쪽입니다. 소화효소가 부족하면 지방이 흡수되지 못한 채 빠져나가 변이 물에 뜨거나 기름막이 보이고, 냄새가 심해지며, 배에 가스가 차고 체중이 서서히 줄어듭니다. 이 상태에서는 영양 흡수가 들쭉날쭉해지므로 식후 혈당도 예측하기 어려워집니다. 소화효소제(췌장효소보충요법, PERT)를 쓰고 있다면 복용 시점과 용량이 적절한지, 지용성 비타민(A·D·E·K)과 뼈 건강을 함께 살펴야 하는지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조정은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처방한 의료진과 함께 정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식사 계획도 일반적인 당뇨 관리와 결이 다를 수 있습니다. 체중을 줄여 인슐린 저항성을 낮추는 방법이 표준처럼 이야기되지만, 암 치료 뒤 회복기에 있고 이미 체중이 빠진 몸에서는 지방과 함께 근육까지 잃기 쉽습니다. 단백질과 총열량을 지키면서 탄수화물을 한 번에 몰아 먹지 않도록 나누어 먹는 방식, 그리고 걷기처럼 오래 이어갈 수 있는 활동을 붙이는 방식이 더 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을 얼마나 줄일지는 영양팀이나 담당 의료진과 상의해 정하는 편이 낫습니다.
저혈당 신호는 미리 외워 두면 좋습니다. 손 떨림, 식은땀, 갑작스러운 허기와 두근거림, 어지럼, 말이 느려지는 느낌이 대표적입니다. 혈당강하제나 인슐린을 쓰는 중이라면 당질 15g 정도를 먹고 15분 뒤 다시 재는 방법을 미리 배워 두고, 밤사이 저혈당이 의심되는 날에는 기록을 남겨 진료 때 보여 주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운전을 하거나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은 분은 이 부분을 특히 미리 상의해 두시기 바랍니다.
진료가 여러 과로 나뉘어 있으면 혈당은 어느 쪽에서도 '내 담당이 아닌' 항목이 되기 쉽습니다. 암 추적은 수술한 과에서, 혈당은 내분비내과나 1차 진료에서 보는 식으로 담당을 분명히 정해 두면 몇 달마다 반복되는 검사 일정 안에 혈당 관리도 자리를 잡습니다. 진료 때는 최근 2~4주의 공복·식후 혈당 기록, 사용 중인 약과 효소제 목록, 체중 변화, 저혈당이 있었던 날짜를 한 장으로 정리해 가면 짧은 시간에도 필요한 이야기가 오갑니다.
다음 상황에서는 예약일을 기다리지 말고 연락하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저혈당이 반복되거나 스스로 회복되지 않을 때, 갈증과 소변량이 뚜렷하게 늘고 체중이 빠르게 줄 때, 구토가 이어져 식사와 약을 유지할 수 없을 때, 발열이나 심한 복통이 함께 올 때입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것으로 개별 진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목표 수치와 약 조정, 식사 계획은 사람마다 달라지므로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