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휴대폰을 켰는데, 환우 대화방에 링크가 하나 올라와 있습니다. 어떤 신약이 해외에서 '긴급 처방 승인'을 받았다는 소식과, 우리나라에도 빨리 들여오도록 서명해 달라는 청원입니다. 손가락은 이미 링크를 누르고 있고, 마음 한쪽에서는 '이번엔 정말 뭔가 달라질까' 하는 기대가 올라옵니다. 그 마음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다만 서명 한 번의 힘이 실제로 어디에 가서 닿는지를 알면, 같은 에너지를 훨씬 효율적인 곳에 쓸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정리해야 할 것은 '승인'이라는 한 단어가 실제로는 여러 가지를 뜻한다는 점입니다. 임상시험을 시작해도 좋다는 승인, 제한된 환자에게 예외적으로 써도 좋다는 승인, 그리고 시장에 정식으로 유통할 수 있게 하는 품목허가(marketing authorization)는 서로 완전히 다른 절차입니다. 뉴스나 청원문에서 이 셋이 뭉뚱그려져 '승인'으로 적히는 일이 자주 있고, 그때 독자는 '이제 처방받을 수 있다'로 읽게 됩니다.

해외 소식에서 흔히 오해되는 것이 확대접근 프로그램(Expanded Access Program, EAP), 다른 이름으로는 동정적 사용(compassionate use)입니다. 이는 아직 허가되지 않은 임상시험용 약을 예외적으로 쓰게 해 주는 통로입니다. 보통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이면서, 쓸 수 있는 표준치료가 남아 있지 않고, 해당 임상시험에도 참여할 수 없는 환자가 대상입니다. 절차도 여러 단계입니다. 담당 전문의가 개발사에 공급을 요청하고, 개발사가 동의해야 하며, 병원의 기관윤리심의위원회(IRB) 심의와 규제기관 승인이 뒤따릅니다. 규제기관이 문을 열어 두어도 개발사가 물량을 내주지 않으면 실제로는 한 알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임상시험용의약품의 치료목적 사용 승인'이라는 비슷한 통로가 있습니다.

정식 허가는 결이 다릅니다. 회사가 안전성과 유효성을 보여 주는 임상시험 자료를 묶어 규제기관에 제출하고, 그 자료를 심사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허가가 나더라도 그것이 곧 '보험으로 쓸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건강보험 급여 등재는 또 하나의 별도 절차이고, 그 사이 기간에는 비급여로 큰 비용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허가와 급여를 하나로 묶어 생각하면 기대와 현실의 간격이 커집니다.

신속심사·우선심사 제도 역시 자주 오해됩니다. 나라마다 이름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회사가 지정을 신청하고 필요한 자료를 제출해야 비로소 시계가 돌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규제기관이 스스로 특정 약을 골라 '이 약을 빨리 심사하겠다'며 절차를 여는 구조가 아닙니다. 제출된 서류가 없으면, 아무리 간절한 청원이 쌓여도 심사대에 올릴 대상 자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목소리를 낼 곳에도 순서가 생깁니다. 국내 도입이 목표라면 첫 번째 상대는 개발사입니다. 한국에도 허가를 신청하고 공급 계획을 세워 달라는 요구가 먼저이고, 그다음이 '신청이 들어오면 신속하게 처리해 달라'는 규제·보건 당국을 향한 요청입니다. 실무적으로는 환자단체 이름으로 개발사 본사와 국내 지사·파트너사에 공식 서한을 보내거나, 국제 환자단체와 연대해 같은 요구를 반복해 전달하는 방식이 쓰입니다. 순서를 바꿔 두면 열심히 모은 서명이 정작 결정권을 가진 쪽에는 닿지 않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개인이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첫째, 그 약이 내 병에 실제로 해당하는지입니다. 최근의 신약은 특정 유전자 변이나 특정 병기에서만 효과가 검증된 경우가 많아, 이름이 알려진 약이라도 나에게는 대상이 아닐 수 있습니다. 둘째, 국내에서 진행 중인 임상시험이 있는지입니다. 임상시험 등록 정보를 찾아보고 담당 의료진과 상의해 보면, 참여가 가능한 경우 확대접근보다 오히려 접근이 빠르고 검사·부작용 관리 체계도 촘촘합니다. 셋째, 표준치료 중 아직 남아 있는 선택지가 있는지입니다. 확대접근은 대개 그 선택지들이 소진된 뒤에 논의됩니다.

조심할 것도 분명합니다. 개인 수입이나 해외 구매 형태로 '같은 이름'을 내건 약이 오가는 경우가 있는데, 성분과 보관 상태, 진위를 확인할 방법이 없고 문제가 생겼을 때 도와줄 체계도 없습니다. 정식 절차로 받는 경우라도 아직 안전성 자료가 쌓이는 중인 약이므로, 예상치 못한 부작용 가능성과 늘어나는 검사·방문 일정을 함께 감안해야 합니다.

정보를 읽는 습관 하나만 남겨 두면 앞으로도 도움이 됩니다. '승인'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세 가지를 확인해 보세요. 누가(어느 나라의 어느 기관이), 무엇을(정식 허가인지 예외적 사용 허용인지), 누구에게(모든 환자인지 조건을 갖춘 소수인지). 그리고 가능하면 원 출처인 규제기관 공고나 개발사 발표를 한 줄이라도 직접 확인하는 편이 좋습니다. 이 세 가지만 걸러 읽어도 실망의 크기가 줄고, 남은 힘을 실제로 움직일 수 있는 곳에 쓸 수 있습니다.

새 약을 기다리는 시간은 길고, 그 기다림 자체가 치료만큼이나 사람을 지치게 합니다. 정확한 정보는 기대를 꺾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애써 낸 목소리가 헛되이 흩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것으로 개별 진료나 상담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약제의 사용 가능 여부, 임상시험 참여, 치료 계획에 관한 결정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