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를 마치고 계절이 여러 번 바뀌었는데도 손끝·발끝의 저림이 그대로이거나, 남들은 시원하다고 하는 바람에 유독 얼음이 닿은 것처럼 시린 느낌이 올라오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름에 실내 냉방이 강해지면 "치료 중일 때보다 더 심한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시기도 합니다. 이런 증상은 흔히 항암제로 인한 말초신경병증(chemotherapy-induced peripheral neuropathy, CIPN)이라고 부르는 상태와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말초신경은 온도·촉각·통증 같은 감각을 뇌로 전달하는 전선에 가깝습니다. 일부 항암제는 이 가는 감각신경 섬유에 손상을 남기는데, 신경은 근육이나 피부보다 회복 속도가 느려서 치료가 끝난 뒤에도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증상이 이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손상된 신경은 신호를 '약하게' 전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자극보다 과장되거나 엉뚱하게 전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미지근한 물이 차갑게 느껴지거나, 가벼운 바람 한 줄기에 통증에 가까운 시린 느낌이 생기는 이상감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여름에 더 힘들어지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에어컨 바람은 피부 표면 온도를 빠르게 떨어뜨리고, 실내와 실외를 오갈 때마다 온도 차가 반복됩니다. 온도 감각을 담당하는 신경이 예민해져 있으면 이 변화가 그대로 증상으로 번역됩니다. 일부 백금계 항암제에서는 치료 직후 며칠간 찬 것에 특히 민감해지는 급성 반응이 알려져 있는데, 치료가 끝나고 한참 지난 시점의 증상은 성격이 다른 만성 경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두 경우 모두 '찬 자극을 줄이는' 대응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실생활에서 해볼 수 있는 것은 바람을 직접 맞지 않게 만드는 일입니다. 송풍구 방향을 사람이 아닌 천장이나 벽 쪽으로 돌리고, 앉는 자리를 바람길에서 비켜 두는 것만으로도 체감이 달라집니다. 얇은 긴소매나 무릎담요, 실내용 양말과 손목까지 덮는 토시처럼 겹쳐 입고 벗기 쉬운 옷이 급격한 온도 변화를 완충해 줍니다. 냉장고에서 꺼낸 물병이나 캔, 차가운 손잡이를 맨손으로 오래 쥐는 상황도 의외로 증상을 자극합니다.
많이 하시는 찜질에는 한 가지 주의가 필요합니다. 감각이 둔해진 부위는 '뜨겁다'는 경고 신호가 제때 오지 않아, 본인은 따뜻하다고 느끼는 온도에서도 저온화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핫팩이나 온열기구를 쓸 때는 감각이 정상인 부위(예: 팔 안쪽)로 먼저 온도를 확인하고, 피부에 직접 대지 말고 천을 한 겹 두르고, 시간을 정해 두고 쓰는 편이 안전합니다. 잠들 때 켜 둔 채로 두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따뜻한 물에 손발을 담그거나 가볍게 마사지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역시 물 온도를 손이 아닌 팔꿈치나 온도계로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치료가 끝난 지 1년이 지난 시점의 저림이라면, 원인을 항암제 하나로만 두지 않고 한 번 정리해 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비타민 B12 결핍, 갑상선기능 이상, 혈당 조절 문제(당뇨), 음주, 특정 약물, 목·허리 척추의 신경 눌림처럼 되돌릴 수 있거나 따로 치료가 필요한 원인이 겹쳐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손발이 하얗게 또는 파랗게 변했다가 돌아오는지, 붓기와 함께 오는지, 한쪽에서만 생기는지에 따라 살펴볼 방향도 달라집니다.
약으로 도움을 받는 길도 있습니다. 여러 진료지침에서는 만성 CIPN 통증에 대해 항우울제 계열인 둘록세틴(duloxetine)이 비교적 근거가 있는 선택지로 언급되며, 상황에 따라 가바펜틴·프레가발린 계열이나 국소도포제가 고려되기도 합니다. 다만 사람마다 효과와 부작용이 다르고 복용 중인 다른 약과의 상호작용도 있어,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해 정해야 합니다. 인터넷에서 권하는 고용량 보충제는 효과가 확실하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고 일부는 오히려 신경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어 임의로 늘리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반대로 걷기·균형 운동·물리치료처럼 몸을 움직이는 방법은 통증뿐 아니라 낙상 위험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기다리지 말고 진료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저림이 아니라 힘이 빠져 물건을 자주 떨어뜨리거나 발이 끌릴 때, 최근 몇 주 사이 빠르게 나빠질 때, 한쪽 팔다리에만 증상이 생길 때, 발에 상처·물집·화상이 생겼는데 아픈 줄 몰랐을 때, 소변·대변 조절에 변화가 생겼을 때입니다. 진료 때는 하루 중 언제 심한지, 어떤 상황(냉방·찬물·아침)에서 촉발되는지, 잠을 깨는지, 단추 잠그기나 계단 내려가기 같은 일상 동작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짧게 적어 가시면 3분 진료에서도 훨씬 구체적인 상의가 가능합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것이며 개별 진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증상의 원인과 치료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므로, 실제 판단과 약물 사용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