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손으로 무언가를 그리고 만드는 시간은 하루의 리듬을 지켜 줍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연필을 오래 쥐고 있으면 손끝이 저릿하거나, 힘이 슬쩍 빠지거나, 선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나이 탓이나 집중력 문제만은 아닐 수 있고, 항암제가 말초신경에 남기는 영향과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항암화학요법으로 인한 말초신경병증(chemotherapy-induced peripheral neuropathy, CIPN)은 백금계(platinum), 탁산계(taxane), 빈카알칼로이드(vinca alkaloid), 일부 면역조절 약제 등에서 비교적 흔하게 보고됩니다. 우리 몸의 신경 가운데 길이가 가장 긴 손끝과 발끝부터, 대개 양쪽이 비슷하게, 장갑과 양말을 낀 듯한 모양(glove-and-stocking)으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느낌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저릿함이나 화끈거림처럼 감각이 더해지는 형태도 있고, 단추를 잠그거나 동전을 집는 일이 어려워지는 것처럼 감각이 무뎌지는 형태도 있습니다. 옥살리플라틴(oxaliplatin)처럼 찬 것에 닿았을 때 손이 찌릿해지는 양상이 두드러지는 약도 있습니다. 주기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쌓이는 경우가 많고, 치료가 끝난 뒤 서서히 나아지지만 회복에는 시간이 걸리며 일부 감각이 오래 남기도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변화를 혼자 참지 말고 일찍 알리는 일입니다. 신경 손상이 더 진행되지 않도록 하는 데는 약의 용량이나 투여 간격을 조정하거나 일정 기간 쉬어 가는 판단이 큰 역할을 하는데, 이는 담당 의료진만 내릴 수 있습니다. 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영양제·보조제는 근거가 제한적이고 일부는 권장되지 않는 경우도 있으므로, 스스로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상의하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진료실에서는 느낌을 형용사로만 말하기보다 일상 동작으로 설명하면 잘 전달됩니다.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손끝 몇 마디까지인지, 단추·젓가락·글씨 쓰기 중 무엇이 어려운지, 찬물에 닿으면 심해지는지, 걸을 때 발바닥 감각이 둔해 휘청이지는 않는지를 짧게 적어 가면 충분합니다. 균형이 흔들린다면 낙상 예방도 함께 이야기해야 합니다.

손을 쓰는 취미는 대개 그만둘 필요 없이 방식을 조금 바꾸면 됩니다. 가는 자루보다 굵은 그립을 끼우고, 힘을 덜 줘도 선이 나오는 무른 심을 쓰고, 20~30분 하고 손을 풀어 주는 식으로 나눠 하면 부담이 줄어듭니다. 감각이 무딘 손은 다치거나 데어도 늦게 알아차리므로 칼·커터·뜨거운 도구·차가운 금속을 다룰 때는 한 번 더 눈으로 확인하는 습관이 도움이 됩니다.

학원이나 문화센터처럼 밖에서 하는 수업이라면 일정도 몸에 맞추는 편이 좋습니다. 항암 주기마다 백혈구가 가장 낮아지는 시기가 있어 그 무렵에는 감염에 약해질 수 있으므로, 다음 수업 날짜를 잡기 전에 대체로 어느 시기가 무난한지 물어보면 계획이 편해집니다. 실내에서는 손위생과 마스크, 붓·팔레트 같은 공용 도구는 가능하면 내 것 사용, 주변에 감기 증상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미루기 정도면 충분합니다. 열이 나거나 오한이 들면 수업이 아니라 병원 연락이 먼저입니다.

다만 저림이 한쪽에만 갑자기 생기거나, 팔다리 힘이 뚜렷하게 빠지거나, 걷기가 어려워지거나, 대소변 조절이 달라진다면 항암제와는 다른 원인일 수 있으므로 기다리지 말고 진료를 받아야 합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이며 개인의 진단이나 진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증상과 사용하는 약제, 치료 일정은 사람마다 다르므로 실제 결정은 담당 의료진과 상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