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을 치료하는 동안 열이 오르면 대부분 감염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런데 피검사에서 염증 수치가 낮게 나오면, 의료진은 세균 감염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보호자는 '감염도 아니라는데 왜 열이 나는지' 몰라 더 답답해지곤 합니다. 사실 몸의 열은 감염 하나만으로 오르는 것이 아니며, 특히 암을 앓는 몸에서는 여러 경로로 체온이 오를 수 있습니다.
먼저 염증 수치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 두면 도움이 됩니다. 흔히 말하는 염증 수치는 CRP(C-반응단백, C-reactive protein)나 프로칼시토닌(procalcitonin), 백혈구 수치 등을 가리킵니다. 이 수치들이 높으면 세균 감염이 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낮으면 그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작다고 봅니다. 다만 '낮다'가 '아무 원인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감염 초기에는 아직 수치가 오르지 않았을 수도 있고, 세균이 아닌 바이러스나 비감염성 원인일 때는 수치가 크게 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암 자체가 열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를 암성 발열 또는 종양열(tumor fever)이라고 부릅니다. 암세포와 이에 반응하는 면역세포는 인터루킨-6(IL-6), 종양괴사인자(TNF) 같은 물질, 곧 발열물질(pyrogen)을 내보내는데, 이것이 뇌의 체온 조절 중추를 자극해 열을 올립니다. 종양열은 대개 오한이 심하지 않고, 환자가 열에 비해 비교적 견딜 만한 경우가 많으며, 소염진통제(NSAID)에 비교적 잘 반응하는 특징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 밖에도 비감염성 원인은 다양합니다. 특정 약이나 수혈에 대한 반응(약물열, drug fever), 탈수, 혈전(다리 정맥이나 폐), 그리고 담도가 막혀 생기는 담관염(cholangitis)처럼 담도암에서 특히 살펴야 하는 원인도 있습니다. 담도가 부분적으로 막히면 오한을 동반한 열이 오르내릴 수 있어, 열의 양상을 눈여겨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집에서는 '열 일지'가 큰 도움이 됩니다. 언제(시간대), 몇 도까지 올랐는지, 오한·식은땀·통증 같은 동반 증상이 있었는지, 해열제를 쓴 뒤 얼마 만에 얼마나 떨어졌는지를 적어 두면 의료진이 원인을 좁히는 데 유용합니다. 특히 오한을 떨며 열이 38.3도를 넘거나, 의식이 흐려지거나, 소변이 급격히 줄거나, 황달이 심해지거나, 혈압이 떨어지는 느낌이 있으면 지체 없이 병원에 연락해야 합니다.
정리하면, 염증 수치가 낮은데 열이 난다는 것은 '원인이 없다'가 아니라 '흔한 세균 감염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종양열, 약물열, 탈수, 담관염 등 확인할 것이 여전히 남아 있으니, 열의 시간과 양상을 기록해 담당 의료진과 함께 원인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입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를 전하기 위한 것으로, 개별 환자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열의 원인과 대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