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이나 중한 병을 앓다 보면 '연명의료(life-sustaining treatment)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때 많은 분이 가장 헷갈려 하는 것이, 관련 서류에 '지금 미리' 서명해야 하는지, 아니면 상태가 나빠졌을 때 그때 결정해도 되는지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리 해 두는 것이 권해지는 이유가 있을 뿐, 반드시 건강할 때 서명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연명의료 관련 서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advance directive)'로, 19세 이상 성인이라면 병이 없어도 누구나 지정된 등록기관을 찾아 스스로 미리 작성해 둘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연명의료계획서'로, 이것은 말기 또는 임종과정에 있다는 진단을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해 작성하는 문서입니다. 즉, 앞의 것은 '건강할 때 미리', 뒤의 것은 '병이 진행된 시점에' 만드는 것으로 성격이 다릅니다.

그렇다면 왜 '미리' 하라고 권할까요.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중환자실에 들어가거나 의식이 흐려지면, 정작 본인이 자신의 뜻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순간이 오기 때문입니다. 그 시점에는 가족이 경황이 없는 가운데 결정을 떠안게 되고, 평소 환자가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두고 서로 다른 의견이 나오기도 합니다. 미리 뜻을 남겨 두면 그 무거운 짐을 가족에게만 지우지 않고 내 의사를 분명히 전할 수 있습니다.

다만 '미리'가 곧 '지금 당장'이나 '한 번 정하면 못 바꾼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든 연명의료계획서든,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다시 철회하거나 내용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치료해 보고 나중에 결정하고 싶다'는 마음도 충분히 존중됩니다. 실제로 상태가 말기로 접어든 뒤 담당 의료진과 상의해 계획서를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서명을 받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셨을 텐데, 이는 그 시점에 환자 본인이 뜻을 밝힐 수 있으면 본인이, 그렇지 못하면 미리 남긴 기록이나 가족의 확인을 바탕으로 절차가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느 쪽이든 '평소 나의 생각'을 가족이 알고 있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한 가지 더,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는 결정과 완화의료(palliative care)는 서로 반대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통증과 증상을 덜어 편안함을 돌보는 완화의료는 어느 단계에서든 함께 받을 수 있습니다. 무엇을 언제 정할지 혼란스럽다면, 담당 의료진에게 두 서류의 차이와 나에게 맞는 시점을 물어보고 가족과 미리 이야기 나눠 두는 것이 가장 든든한 준비입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것으로, 개개인의 진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인 결정과 서류 작성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