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산 치자꽃 화분이 요즘 내 가장 가까운 친구다. 창가에 두고 잠들면 밤새 바람을 타고 향이 코끝을 맴돈다. 그 냄새가 어찌나 은은한지, 잠결에도 입가가 풀린다. 향 하나로 마음이 이렇게 누그러지다니. 몸이 아프고부터는 이런 자잘한 것들이 자꾸만 크게 와닿는다.

어제 직장에 사표를 냈다. 내고 돌아서는 길엔 어깨가 한결 가벼웠는데, 이상하게 그러고 나니 출근이 더 싫어진다. 아직 한 달 넘게 남았다는 게 새삼 무겁다. 십이 년 만에 다시 잡은 일자리였고, 아이들과 부대끼는 시간 자체는 분명 즐거웠다. 그런데 사람한테서 오는 피로는 어쩔 도리가 없더라. 괜히 나를 못마땅해하는 눈길도 있었고, 그게 또 우습기도 했다. 몸도 마음도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매일 느꼈다. 건강하던 시절이라면 그냥 묵묵히 버텼겠지. 지금은 아니다. 나를 더 살펴야 할 때라는 걸 안다. 잠시 쉬면서 팔월 검사만 무사히 넘기면 좋겠다.

모나지 않게 둥글둥글 살아간다는 게 영 쉽지가 않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데 남과 발을 맞춰 걷는 일은 또 얼마나 큰 짐인지. 아직 아파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게 왜 힘든지 잘 모른다.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요즘 내 하루는 뒤죽박죽이다. 정해둔 일과는 자꾸 어그러지고, 머릿속이 도무지 정리 안 되는 날도 많다. 그러다 문득, 매일을 빈틈없이 반듯하게 사는 사람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될까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며칠 전엔 공원 벤치에 앉아 있다가 소나기를 맞았다. 흙냄새, 빗물 냄새가 코를 가득 채우던 그 순간이 어쩐지 행복했다. 다들 비를 피해 처마 밑으로 모여들었지만, 나는 이렇게 코앞에서 비를 느껴본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 비가 잦아들 무렵 개천 쪽으로 내려가는데, 오리 한 가족이 물길이 아니라 산책로 위로 줄줄이 아장아장 걸어가고 있었다. 불어난 물살이 제 몸엔 버겁다는 걸 아는 눈치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한참 서서 봤다. 나라고 감당 못 할 일을 무조건 피하며 살진 않지만, 적어도 지금은 슬쩍 돌아가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돌아보면 나는 회사에선 남들한테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고만 애쓴 것 같다. 정작 보살펴야 할 사람은 나였는데 말이다. 남은 한 달은 나한테 다정한 사람이 되어 마무리하고 싶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니까. 초등학생이던 두 아이가 어느새 스물 넘은 어른이 되어, 이제는 거꾸로 나를 다독이고 응원해준다. 그 마음 하나가 또 오늘을 살게 한다.

치료받고 계신 분들 모두, 언젠가 다 옛이야기처럼 웃으며 그 시절을 꺼내볼 날이 오면 좋겠다. 돌아보면 시간은 정말이지 어디에도 걸리지 않고 흘러가더라. ※ 이건 그저 한 사람이 겪고 느낀 이야기일 뿐이에요. 치료나 몸 상태에 관한 결정은 꼭 담당 선생님과 먼저 이야기 나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