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이라는 말을 들으면 다들 숫자부터 떠올린다. 5년 생존율이 어떻고 하는 통계들. 그런데 그 통계 바깥에서 십수 년을 버티며 살아가는 분들도 분명히 있다. 우리 가족이 그렇다. 췌장암 진단을 받고 큰 수술을 한 지 벌써 십수 년이 지났는데, 어머니는 지금도 당신의 하루를 살고 계신다.
물론 평탄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몇 차례 위장관에서 피가 났는데, 한번은 의식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 응급실로 달려갔다. CT를 찍어도 어디서 새는지 끝내 못 찾았다. 다행히 출혈은 저절로 잦아들었고, 수혈을 받고 혈압이 잡히자 다시 집으로 모셔올 수 있었다. 담당 선생님도 오래전 수술 자국 어딘가에서 난 게 아닐까 추측만 할 뿐, 언제 또 그럴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그 말이 무섭긴 했지만, 그 뒤로는 잠잠하다.
요즘 어머니의 하루는 사실 췌장암보다 다른 것들로 채워진다. 한쪽 눈 백내장 수술을 끝내고, 곧 반대쪽도 하러 가신다. 혈당은 연속혈당측정기를 붙이고 인슐린으로 관리하는데, 췌장 수술을 한 분들에게 당뇨는 거의 따라오는 동반자 같은 거라 이젠 익숙해지셨다. 끼니마다 소화효소제를 챙기고, 식후엔 유산균을 한 알 드신다. 잘게 쪼개진 이 습관들이 모여 하루가 굴러간다.
잠자리 들기 전엔 수면을 돕는 약을 드시고, 기억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해서 인지기능에 도움 되는 약도 처방받아 드신다. 신기하게도 그걸 드신 뒤로 머리가 한결 맑아진 것 같다고 하신다. 옆에서 보는 나로서는 그 말 한마디가 어떤 검사 수치보다 반갑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지만, 막상 곁을 지켜보면 그렇게 거창한 것도 아니다. 약 챙기고, 병원 같이 가고, 오늘은 좀 어떠시냐 묻는 일의 반복일 뿐이다. 그 반복이 쌓여 십수 년이 됐다. 비슷한 길을 걷는 분들과 보호자들에게, 통계가 곧 운명은 아니더라는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었다.
여기 적은 건 한 가정의 경험일 뿐, 약이나 치료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니 꼭 주치의와 상의해서 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