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다시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던 날, 솔직히 나는 차 안에서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백혈병 진단을 받고 거의 2년 가까이 병원과 집을 오가며 보낸 시간, 그 끝에 "이제 학교 가도 됩니다"라는 한마디가 이렇게 무겁게 느껴질 줄 몰랐다. 항암 치료가 끝났다고 끝이 아니더라. 아이도 나도, 머리로는 기뻐야 하는데 가슴 한구석이 자꾸 조였다. 면역은 다 회복됐을까, 친구들이 변한 머리카락을 보고 뭐라 하진 않을까, 한 학기씩 늦어진 공부는 따라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복학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한 건 담임 선생님, 보건 선생님과 길게 이야기를 나눈 일이었다. 막상 만나보니 학교 쪽에서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조심스러워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주 솔직하게 풀어놨다. 아이가 어떤 치료를 받았고, 지금은 어떤 상태인지, 감염에 약한 시기가 있어서 반에 수족구나 수두 같은 게 돌면 미리 알려주셨으면 좋겠다는 것. 체육 시간에 무리한 활동은 컨디션 봐가며 빠질 수 있게 해달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를 '환자'가 아니라 그냥 반 친구로 봐줬으면 좋겠다는 부탁. 그날 선생님이 "어머님, 너무 걱정 마세요. 천천히 적응하면 돼요"라고 해주신 말이 어찌나 든든하던지.

등교 첫날은 반나절만 보냈다. 처음부터 종일 앉아 있으면 아이가 지칠 게 뻔했으니까. 이게 의외로 중요했다. 욕심내서 한 번에 정상 등교를 시켰다가 며칠 만에 몸살이 나서 다시 결석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여럿 봤다. 우리는 오전 수업만, 그다음 주는 점심까지, 그렇게 한 달에 걸쳐 시간을 늘려갔다. 아이가 "엄마, 오늘은 좀 더 있다 가도 돼"라고 먼저 말하던 날, 나는 또 눈물이 핑 돌았다. 속도는 아이가 정하게 두는 게 맞았다.

걱정했던 친구들 반응은 오히려 아이들이 더 어른스러웠다. 가발 대신 짧은 머리로 갔는데, 한 아이가 "너 머리 짧으니까 멋있다"고 했단다. 물론 사이사이 서툰 질문도 있었다. "너 이제 안 아파?" "왜 자꾸 손 씻으래?" 같은. 그런데 그게 악의가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라는 걸 아이도 알더라. 우리는 집에서 미리 연습을 해뒀다. "응, 이제 많이 나았어. 근데 아직 조심해야 해서 그래" 정도로 담담하게 답하는 법을. 준비해 둔 한두 문장이 있으니 아이가 당황하지 않았다.

학습은 솔직히 가장 더디게 회복된 부분이다. 오래 쉬다 보니 집중력도 떨어지고, '항암 후 인지 기능'이라고 부르는, 기억이나 집중이 예전 같지 않은 시기가 한동안 있었다. 처음엔 애가 게을러진 줄 알고 다그쳤다가 많이 미안했다. 학교에 부탁해서 시험 시간을 조금 늘려 받기도 하고, 진도가 벅찬 과목은 방과 후에 따로 봐주시기도 했다. 한 번에 다 따라잡으려 하지 않고 1년쯤 길게 보기로 마음먹으니 나도 아이도 한결 편해졌다.

지금 그 아이는 친구들과 떡볶이 먹으러 가고, 숙제 안 해서 혼나기도 하는 평범한 학생으로 잘 지낸다. 돌아보면 학교로 돌아간다는 건 단순히 출석을 다시 하는 게 아니라, 아이가 자기 일상을 되찾고 '나는 환자가 아니라 그냥 나'라는 걸 확인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혹시 지금 같은 길목에 서 있는 부모가 있다면, 너무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다만 복학 전에는 반드시 주치의와 상의해 등교 시기와 주의사항을 확인하고, 학교와 미리 손발을 맞춰두길 바란다. 이 글은 한 가족의 경험일 뿐, 아이마다 상태가 다르니 구체적인 판단은 의료진과 함께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