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백혈병 진단을 받던 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며칠째 멍이 잘 들고 자꾸 피곤해한다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소아과에 갔는데,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소아 백혈병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가까이 올 줄은 몰랐다. 다행히 소아 급성 림프모구 백혈병은 어린이 백혈병 중에서도 비교적 치료 성적이 좋은 편이라고, 담당 선생님이 차분하게 설명해주셨다. 그 한마디에 매달려서 우리 가족의 긴 싸움이 시작됐다.

치료는 보통 길게 간다. 처음 한 달 남짓은 관해유도라고 해서, 골수 속 암세포를 빠르게 줄이는 집중 치료 기간이었다. 항암제를 본격적으로 쓰니 아이가 토하고 입안이 헐고 머리카락이 빠졌다. 그다음엔 공고요법, 재유도, 유지요법으로 단계가 이어졌는데 유지요법만 해도 2년 가까이 걸렸다. 사실 이 전체 과정이 짧으면 2년, 길면 3년 넘게도 간다. 중간중간 척수강 내 항암제를 넣는 시술도 있었고, 피검사로 수치가 떨어지면 외출도 못 하고 격리하듯 지내야 했다. 면역이 바닥일 땐 작은 감기도 입원으로 이어지니까, 늘 체온계를 손에 쥐고 살았다.

이 긴 시간을 부부 둘이 감당하려니 처음엔 엉망이었다. 한 사람이 병실에 붙어 있으면 다른 한 사람은 직장과 집과 첫째 아이 사이를 정신없이 오갔다. 그러다 우리가 깨달은 건, 역할을 '명확하게' 나눠야 둘 다 무너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우리 집은 이렇게 정했다. 엄마는 주 보호자로 병동 안에서 아이 곁을 지키고 컨디션을 매일 기록했다. 아빠는 바깥일 담당이었다. 의료비와 산정특례, 소아암 지원사업 같은 행정 처리, 약 수령, 검사 일정 조율을 맡았다. 약 이름과 복용 시간을 노트 한 권에 같이 적어둔 게 의외로 큰 도움이 됐다. 누가 봐도 알 수 있으니 교대할 때 빠뜨리는 게 없었다.

잊지 말아야 할 사람이 또 있었다. 건강한 첫째다. 동생이 아프면 부모 시선이 온통 그쪽으로 쏠리는데, 그러다 보면 큰아이가 조용히 외로워진다. 우리는 조부모님께 부탁드려 첫째의 일상을 최대한 지켜주려 했고, 일주일에 한 번은 무슨 일이 있어도 큰아이랑 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어린 환아 본인에게도 솔직하게, 나이에 맞는 말로 설명해줬다. "지금 몸 안에 나쁜 세포가 있어서 약으로 싸우는 중이야" 정도로. 아이들은 생각보다 잘 이해하고, 오히려 어른보다 씩씩하다.

돌아보면 가장 큰 힘은 같은 병동 부모들이었다. 처음 듣는 의학 용어, 부작용 대처, 어느 보조식이 그나마 넘어가더라 같은 정보는 책보다 옆 침대 엄마한테서 더 빨리 배웠다. 그리고 보호자 본인 몸도 챙겨야 한다. 간병하다 보면 내가 쓰러지는 줄도 모른다. 둘 다 동시에 지치지 않게, 일부러 쉬는 날을 정해 교대로 집에 가서 잠을 잤다. 지금 우리 아이는 유지요법을 끝내고 정기 추적관찰만 받으며 학교에 다닌다. 그 평범한 등굣길이 얼마나 귀한지, 겪어본 사람은 안다.

※ 이 글은 한 가족이 겪은 경험을 익명으로 정리한 것이고, 치료 과정이나 기간은 아이마다 다 다릅니다. 진단과 치료에 관한 건 꼭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