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 병명을 들었을 때는 솔직히 글자가 눈에 안 들어왔다. 신경모세포종. 발음도 낯선 그 단어를 손바닥에 적어가며 외웠던 기억이 난다. 아이가 자꾸 배가 아프다고 했고, 밥을 잘 안 먹었고, 어쩐지 안색이 노랬다. 동네 소아과를 몇 번 다녀도 시원한 답이 없어서 결국 큰 병원으로 갔는데, 거기서 검사가 줄줄이 이어지더니 입원하라는 말이 떨어졌다. 그날 짐을 싸는데 양말 한 짝을 어디 뒀는지 한참을 찾았다. 머릿속이 하얘지면 이상하게 그런 사소한 게 안 보인다.
신경모세포종은 교감신경 계통의 세포에서 생기는 소아암이라고 했다. 부신이나 척추 양옆을 따라 잘 생기고, 다섯 살 이전 아이에게 비교적 흔한 편이라는 설명도 들었다. 같은 병이라도 아이마다 진행 양상이 꽤 다른 모양이었다. 저절로 좋아지는 경우도 있다는데 우리 아이는 그런 운 좋은 쪽은 아니었다. 검사 결과를 들으며 의료진이 위험군이라는 표현을 썼고, 그 뒤로는 항암, 수술, 그다음 또 무슨 치료까지 단계가 길게 그려졌다.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니라 마라톤이라는 말을 그때 처음 실감했다.
항암치료를 시작하니까 아이 머리카락이 베개에 한 움큼씩 묻어났다. 그걸 처음 봤을 때 화장실에서 혼자 좀 울었다. 정작 아이는 자기 머리를 만지며 "엄마, 빡빡이 됐다" 하고 웃는데, 그 천연덕스러움이 더 마음을 후볐다. 입맛이 뚝 떨어져서 좋아하던 것도 안 먹으려 하고, 면역이 떨어지는 시기엔 작은 열에도 한밤중에 응급으로 달려가야 했다. 손 씻기, 마스크, 사람 많은 곳 피하기. 평범했던 일상이 죄다 조심해야 할 목록으로 바뀌었다. 병실 안에서 보호자도 같이 갇히는 셈이라, 며칠씩 햇빛 한 번 제대로 못 본 적도 많았다.
그래도 막상 그 안에서 버티게 해준 건 거창한 게 아니었다. 회진 도는 의료진이 아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줄 때, 같은 병동 다른 보호자가 말없이 건넨 컵라면 하나, 수치가 조금 올랐다는 한 줄짜리 소식. 그런 작은 것들로 하루를 넘겼다. 나는 검사 수치랑 약 이름을 적는 노트를 따로 만들었는데, 모르면 무섭고 알면 그나마 덜 무섭더라. 궁금한 건 부끄러워 말고 그때그때 물어보는 게 낫다는 걸 한참 뒤에 깨달았다. 그리고 보호자도 사람이라 가끔은 교대하고 나가서 밥을 제대로 먹어야 한다는 것도. 내가 무너지면 아이를 못 지킨다.
치료가 다 끝났다고 바로 예전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었다.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고 볼살이 통통해지는 데도 시간이 걸렸고, 정기적으로 추적검사를 받으러 다니는 동안엔 결과 나오기 전까지 매번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또래보다 체력이 약해서 학교 적응도 천천히 갔다. 근데 그 더딘 회복을 지나오면서 우리 가족이 배운 게 있다면, 좋아지는 건 계단처럼 한 칸씩이라는 거였다. 오늘 한 숟갈 더 먹었으면 그게 오늘의 성공. 그렇게 작게 끊어서 기뻐하는 법을 아이가 오히려 나한테 가르쳐줬다.
혹시 지금 비슷한 길 위에 서 있는 분이 이 글을 본다면, 너무 멀리까지 미리 겁먹지 마시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루치만 버티면 된다. 이건 한 가족이 겪은 이야기일 뿐 의학적 판단은 아니니, 치료와 관련된 결정은 꼭 담당 의료진과 충분히 상의하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