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폐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머릿속이 하얬다. 그런데 며칠 뒤 유전자검사에서 EGFR이라는 변이가 나왔고, 의사는 "먹는 약으로 시작해 볼 수 있겠다"고 했다. 주사 항암을 각오하고 있던 터라 알약 한 통을 받아 들었을 때 묘하게 맥이 풀렸다. 이렇게 작은 게 정말 듣는 걸까 싶었다.

표적치료제는 하루 한 알, 같은 시간에 먹는 게 전부였다. 나는 아침 식사 직후로 정해 두고 휴대폰 알람을 맞췄다. 처음 몇 주가 지나니 효과인지 부작용인지 몸이 먼저 알려 주었다. 얼굴과 가슴에 여드름 같은 발진이 올라왔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날도 늘었다. 의사는 흔한 일이라며 발진엔 보습제와 연고를, 설사엔 미리 받아 둔 약을 쓰라고 했다. 신기하게도 발진이 잘 올라오는 사람일수록 약이 잘 듣는 경향이 있다는 말에, 거울 속 울긋불긋한 얼굴이 조금은 든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손톱과 발톱이 갈라지고 옆이 곪는 건 생각보다 성가셨다. 설거지할 때 고무장갑을 끼고, 손발에 자주 크림을 바르는 습관이 생겼다. 햇볕에 피부가 예민해진다고 해서 외출할 땐 모자와 선크림을 챙겼다. 별것 아닌 듯한 이런 소소한 관리들이, 약을 중간에 끊지 않고 끝까지 가게 해 주는 버팀목이라는 걸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

두 달쯤 지나 찍은 사진에서 종양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진료실을 나오며 한참을 서 있었다. 숨쉬기가 편해지고, 끊겼던 산책을 다시 시작했다. 일도 조금씩 손에 잡혔다. 겉으로 보면 나는 그냥 매일 약 한 알 먹는 사람이었다. 그게 가장 고마운 점이었다. 병원에 매여 살지 않고, 그냥 살 수 있다는 것.

다만 마음 한구석엔 늘 같은 그림자가 있다. 이 약이 영원히 듣지는 않는다는 것. 언젠가는 내성이 생겨 종양이 다시 깨어날 수 있다고 의사는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그래서 정기 검사가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잠을 설친다. 결과지를 받기 전까지의 그 기다림은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내성이 오면 그때 다음 약을 찾자고 마음먹는다. 실제로 내성이 와도 그다음 단계의 치료가 준비되어 있다는 걸 알고 나니, 오늘을 미리 망칠 이유가 없었다. 약을 먹고, 밥을 먹고, 걷고, 자는 평범한 하루. 그 평범함을 지키는 것이 지금 내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 글은 한 사람의 경험을 옮긴 것으로, 부작용과 치료 반응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약 복용과 증상 관리는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