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치료를 받는 동안 주기마다 확인하는 혈액 종양표지자(tumor marker) 수치가 몇 번 잘 내려가다가 한 번 올라가면, 많은 분들이 곧바로 '약에 내성이 생긴 것 아닌가'라는 생각에 닿습니다. 다음 진료일까지 며칠이 남았다면 그 며칠이 유난히 길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만 진료실에서 쓰는 '내성' 혹은 '질병 진행(progression)'이라는 말은 숫자 하나에 붙는 이름이 아니라, 서로 다른 축 몇 가지를 겹쳐 본 뒤에 붙는 이름입니다. 그 축이 무엇인지 알아 두면 기다리는 시간을 조금 다르게 쓸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축은 영상입니다. 치료가 듣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대개 CT나 MRI에서 기존 병변의 크기 변화, 새로 생긴 병변의 유무를 기준으로 내려집니다. 여러 연구와 진료 현장에서는 병변 크기를 일정한 규칙(RECIST 등)으로 재어 비교하는데, 여기서 '진행'으로 분류되려면 대체로 정해진 폭 이상의 증가나 새 병변의 출현이 확인되어야 합니다. 혈액 수치만으로 치료를 바꾸는 경우는 흔치 않고, 보통은 영상 일정을 앞당길지 여부를 함께 논의하게 됩니다.

두 번째 축은 숫자 자체의 추세입니다. 한 시점의 값보다 방향과 기울기가 더 많은 정보를 줍니다. 두 번 이상 연속해서 오르는지, 폭이 소폭인지 배 이상 뛰었는지, 이전 최저치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가 다르게 읽힙니다. 검사실이나 시약(kit)이 바뀌면 같은 몸에서도 값이 달라질 수 있어, 가능하면 같은 곳에서 이어서 재는 편이 비교에 유리합니다.

세 번째 축은 암이 아닌 몸의 사정입니다. 담도가 좁아지거나 스텐트가 막혀 담즙이 정체될 때, 담관염이나 다른 감염·염증이 있을 때, 간 수치가 흔들릴 때 표지자가 함께 올라갈 수 있습니다. 흡연이나 일부 양성 질환도 값에 영향을 줍니다. 또한 CA 19-9는 루이스 항원(Lewis antigen)이 음성인 사람에서는 병이 있어도 거의 오르지 않아, 애초에 추적 지표로 쓰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상승이라도 황달·발열·복통이 함께 있는지에 따라 해석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네 번째 축은 채혈 시점입니다. 주사 직후인지 회복기인지, 주기 중 어디에서 뽑았는지에 따라 값이 흔들릴 수 있고, 치료 초기에는 일시적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가는 경우도 보고되어 있습니다. 매번 비슷한 시점에 뽑아 두면 이런 잡음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다음 검사 전에 정리해 두면 좋은 순서는 이렇습니다. 첫째, 지금까지의 수치를 날짜와 함께 한 줄로 늘어놓아 추세를 눈으로 봅니다. 둘째, 각 채혈일의 컨디션을 옆에 적습니다(발열, 오한, 소변색, 눈·피부의 노란기, 복통, 설사, 체중). 셋째, 검사받은 기관이 바뀐 적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넷째, 다음 영상 검사 예정일과 그 사이에 잡힌 처치 일정을 확인합니다. 다섯째, 진료실에서 물을 것을 미리 적어 둡니다 — 지금 수치를 어떻게 보시는지, 영상을 앞당길 필요가 있는지, 진행이 확인되면 다음 선택지는 무엇인지, 조직이나 혈액을 이용한 유전자·바이오마커 검사를 언제 고려하는지, 임상시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기다리는 동안이라도 눈이나 피부가 노래지거나, 소변색이 진해지거나, 오한을 동반한 발열이 있거나, 통증이 갑자기 심해지거나, 먹지 못하는 상태가 이어진다면 다음 예약을 기다리지 말고 담당 의료진에게 알리는 편이 좋습니다. 이런 변화는 그 자체로 치료가 필요한 상황일 수 있고, 수치가 오른 이유를 설명해 주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설령 진행이 확인되더라도 그것이 곧 치료의 끝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다음 계열의 약제로 바꾸는 길, 국소 치료를 더하는 길, 증상 조절을 앞세우는 길, 임상시험을 알아보는 길이 각각 다른 조건 위에 놓여 있고, 그 조건에는 전신 상태와 장기 기능, 이전 치료 이력이 함께 들어갑니다. 지금 손에 쥔 숫자 하나는 그 판단에 들어가는 여러 재료 중 하나입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를 정리한 것으로 개별 환자에 대한 진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검사 결과의 해석과 치료 방침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해 결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