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떠나보낸 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슬픔이 아니라 후회인 경우가 많습니다. 왜 검진을 챙겨 드리지 않았을까, 왜 그날 그렇게 말했을까, 왜 여행 한 번 보내 드리지 못했을까. 이런 생각을 심리학에서는 사후가정사고(counterfactual thinking)라고 부릅니다. '만약 ~했다면'이라는 문장을 반복해서 만들어 내는 마음의 작동 방식으로, 통제할 수 없었던 일 앞에서 어떻게든 원인을 찾아 다음을 대비하려는 뇌의 오래된 습관에 가깝습니다. 이상한 반응이 아니라, 애도의 아주 흔한 얼굴입니다.

후회가 유독 '건강검진'에 꽂히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결과를 알고 난 뒤에는 지나간 신호들이 유난히 또렷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사후과잉확신 편향(hindsight bias)이라고 합니다. 그때는 소화가 좀 안 되는 정도, 조금 피곤한 정도였던 일이, 진단명을 알고 난 지금은 '누가 봐도 이상했던 신호'로 다시 배열됩니다. 문제는 이 재배열이 과거에 실제로 쥐고 있던 정보가 아니라, 지금 손에 있는 답안지를 놓고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의학적인 사실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국가암검진은 위암·대장암·간암·유방암·자궁경부암·폐암을 대상으로 하며, 췌장암과 담도암은 무증상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정기 검진 항목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국제 지침들도 증상이나 위험요인이 없는 성인에게 췌장암 선별검사를 일괄 권고하지는 않습니다. 이득보다 위양성·불필요한 추가 검사 같은 부담이 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흔히 받는 복부초음파는 장 안의 가스와 위치 때문에 췌장 전체, 특히 꼬리 쪽이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고, 혈액검사 항목인 CA 19-9는 담도가 막히거나 염증이 있을 때도 오르고 반대로 암이 있어도 오르지 않는 사람이 있어 선별용 지표로는 쓰지 않습니다. 가족력, 유전성 증후군, 췌장 낭종, 원인이 뚜렷하지 않은 새 당뇨와 체중 감소가 겹친 경우처럼 위험이 높다고 판단되는 사람에 한해서만 MRI/MRCP나 내시경초음파(EUS)로 정기 감시를 논의합니다.

다시 말해, 일반적인 건강검진을 해마다 받으셨더라도 그 병이 미리 잡혔으리라는 보장은 없었습니다. 반대로 몇 달 일찍 알았다면 무엇이 달라졌을지도 누구도 단정할 수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하나입니다. 그 판단은 당신이 그때 가지고 있던 정보로는 내릴 수 없는 판단이었다는 것입니다.

자책이 하루를 통째로 삼킬 때는 순서를 정해 두는 편이 낫습니다. 첫째, 머릿속을 도는 후회 문장을 종이에 그대로 적습니다. 둘째, 그 문장을 두 칸으로 나눕니다. 한 칸은 '그때 내가 알 수 있었고 선택할 수 있었던 것', 다른 칸은 '지금 알게 되어서 보이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문장은 두 번째 칸으로 넘어갑니다. 셋째, 같은 종이 아래쪽에 실제로 있었던 일도 적습니다. 통증이 심하지 않으셨던 시간, 손녀를 안아 보신 몇 달 같은 것들입니다. 이것은 후회를 지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억이 후회 한 줄로만 압축되지 않게 하려는 작업입니다. 넷째, 몸의 기본을 지킵니다. 수면 시간, 하루 한 끼라도 제때 먹기, 잠을 위해 술을 쓰지 않기입니다. 술은 잠을 얕게 만들어 새벽에 자책이 더 크게 돌아오게 합니다.

혼자 삭이지 않아도 됩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기관에서는 이용 여부와 무관하게 사별가족을 위한 상담이나 모임을 운영하는 곳이 있고,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도 애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신호가 보이면 시간을 더 기다리지 말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편이 좋습니다. 사별 후 1년 가까이 지나도록 그리움과 몰두가 줄지 않고 일상이 멈춰 있을 때, 자책이 '내가 죽게 만들었다'는 확신으로 굳어질 때, 식사와 수면이 몇 주째 무너져 있을 때, 그리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스칠 때입니다. 마지막 경우에는 즉시 도움을 청해야 하며, 국내에서는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를 24시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것이며 개별 진료나 상담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건강 상태나 마음의 어려움에 대한 판단과 치료는 반드시 담당 의료진이나 정신건강 전문가와 상의해 결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