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주사를 맞고 돌아온 밤, 가족은 죽을 끓여 주고 친구들은 안부를 물어 오는데도 마음 한가운데가 텅 빈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곁에 사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치료를 견디는 일이 결국 내 몸 안에서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약이 들어갈 때의 서늘함, 새벽에 올라오는 메스꺼움, 결과지를 기다리는 며칠의 시간은 아무리 가까운 사람도 대신 겪어 줄 수 없습니다. 이런 감각을 실존적 외로움(existential loneliness)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며, 이는 주변의 지지가 모자라다는 뜻이 아니라 병을 앓는 경험 자체에 따라오는 흔한 반응으로 이해합니다.
많은 분이 '세상은 다 돌아가는데 나만 멈춰 있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친구들의 이직과 여행, 아이들의 학기가 지나가는 동안 내 달력은 다음 주기와 다음 검사로만 채워집니다. 시간이 어긋난 듯한 이 감각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고마움을 모르는 마음과는 다릅니다. 스스로를 탓하지 않아도 됩니다.
몸의 조건도 외로움을 키웁니다. 백혈구와 호중구(neutrophil)가 낮은 시기에는 면회와 외출이 제한되고, 체력이 떨어지면 모임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탈모나 체중 변화 때문에 사람 만나기가 꺼려지고, 입맛과 냄새 감각이 달라져 함께 밥을 먹는 자리 자체가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즉 마음의 문제만이 아니라 실제 고립이 나란히 일어나는 시기입니다.
여기에 '괜찮은 척'이 얹힙니다. 가족의 걱정을 덜어 주려고 밝게 지내다 보면 정작 자기 마음을 둘 곳이 사라집니다. 곁을 지키는 가족도 같은 이유로 자기 두려움을 숨기다 보니, 서로 배려하다가 각자 외로워지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짧게라도 "오늘은 위로 말고 그냥 옆에 있어 줘", "지금은 괜찮지 않아"라고 말해 두는 것만으로 이 구조가 조금 느슨해집니다.
외로움과 우울을 가려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외로움은 상황에 따라 오르내리고 좋은 순간에는 잠시 풀립니다. 그러나 2주 넘게 흥미와 즐거움이 사라지고, 스스로가 짐처럼 느껴지거나, 죽고 싶다는 생각이 반복된다면 이는 도움이 필요한 신호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는 미루지 말고 의료진이나 가족에게 바로 알리는 것이 안전합니다. 또 스테로이드를 비롯한 일부 약제, 갑상선·전해질 이상, 조절되지 않는 통증과 불면도 기분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어, 되돌릴 수 있는 원인이 있는지 함께 확인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도움을 청한다고 해서 치료에 불이익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병원에 따라 정신건강의학과 협진이나 정신종양(psycho-oncology) 상담, 사회복지팀, 사별·투병 지원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고, 담당 간호사에게 물어보면 연결 경로를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환우 모임이나 온라인 커뮤니티는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확인을 준다는 점에서 큰 힘이 되지만, 거기서 오가는 치료 정보는 사람마다 병기와 약이 다르므로 반드시 주치의와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당장 해볼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막연한 위로 대신 '수요일에 병원 같이 가 줄래'처럼 구체적으로 부탁하기, 하루 한 번 누군가에게 짧은 연락 남기기, 잠들기 어려운 새벽에 무엇을 할지 미리 정해 두기, 몸이 허락하는 만큼 햇빛을 보고 짧게 걷기, 그리고 감정을 그대로 적어 두는 짧은 기록이 그렇습니다. 외로움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 외로움이 밀려오는 시간을 혼자 견디지 않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하면 부담이 덜합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것으로 개인의 진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기분 변화나 수면·식욕 문제, 죽음에 대한 생각이 이어진다면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