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치료를 이어오다 어느 날 '이제 더 해드릴 치료가 없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호스피스를 권유받으면, 환자도 가족도 그 자리에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그리고 곧 이런 물음이 떠오릅니다. 다른 병원으로 옮기면 달라지지 않을까, 임상시험이라도 받아보면 어떨까. 이 물음은 결코 욕심이 아니고, 진료 현장에서도 자주 오가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짐을 싸기 전에 그 말이 의료진에게 어떤 뜻인지, 그리고 새로운 치료의 문이 어떤 기준으로 열리고 닫히는지 알아두면 남은 시간과 체력을 훨씬 덜 후회하는 쪽으로 쓸 수 있습니다.

먼저 그 말의 뜻입니다. 대개 이 표현은 '효과와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어 진료지침에 올라 있는 표준치료(standard treatment)를 순서대로 다 써 보았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돌봄이 끝났다는 뜻도, 환자를 포기했다는 뜻도 아닙니다. 이 시점 이후에도 통증·숨참·구역·식욕저하를 다스리는 치료는 계속되고, 사람에 따라 임상시험이라는 또 다른 선택지가 남아 있기도 합니다.

임상시험(clinical trial)은 아직 표준치료로 인정되지 않은 약이나 약의 조합이 얼마나 안전하고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연구입니다. 초기 단계인 1상은 주로 안전한 용량과 부작용의 양상을 살피는 데 목적이 있어 개인의 호전을 약속하지 않고, 후기 단계인 3상은 기존 치료와 비교해 더 나은지를 따집니다. 그래서 임상시험은 '마지막 희망'이라는 말보다 '아직 답이 정해지지 않은 질문에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이 성격을 먼저 이해하고 들어가는 편이 기대와 실망의 진폭을 줄여 줍니다.

참여할 수 있는지를 가르는 기준은 병의 종류만이 아닙니다. 가장 흔히 걸리는 관문은 수행상태(ECOG performance status)입니다. 하루 중 얼마나 앉아 있고 걸을 수 있는지, 스스로 일상생활을 어느 정도 해내는지를 등급으로 나눈 것으로, 많은 시험이 어느 정도 활동이 가능한 상태를 요구합니다. 그 밖에 간·신장 기능 수치와 혈구 수치 같은 장기 기능, 이전에 받은 치료의 종류와 마지막 투여 이후 필요한 휴약기간(washout period), 영상에서 크기를 잴 수 있는 병변(measurable lesion)이 있는지, 조직검사 검체가 남아 있고 유전자·표지자 검사(biomarker) 결과가 조건에 맞는지도 함께 봅니다.

이 기준들이 알려주는 현실적인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몸 상태가 떨어질수록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빠르게 좁아진다는 점입니다. 누워 지내는 시간이 늘고 검사 수치가 흔들리기 시작한 뒤에는, 마음이 굳어졌을 때조차 조건을 맞추기 어려워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알아볼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체력이 남아 있을 때 주치의에게 먼저 말을 꺼내 두는 편이 낫습니다. '지금 제 상태로 참여를 논의해 볼 만한 연구가 있을까요, 있다면 어디에 문의하면 될까요'라고 묻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다른 병원에 의견을 들으러 갈 때는 준비물이 결과를 좌우합니다. 진료의뢰서, 최근 영상검사 CD와 판독지, 조직검사 결과지와 필요하면 병리 슬라이드·블록, 지금까지 쓴 항암제의 이름과 시작·종료 시점을 정리한 치료 이력, 최근 혈액검사 결과를 함께 챙기면 같은 검사를 다시 받느라 시간을 버리는 일이 줄어듭니다. 치료 이력은 가족이 미리 표로 한 장 정리해 두면 진료실에서 큰 도움이 됩니다.

또 하나 오해하기 쉬운 부분은, 완화의료나 호스피스를 받아들이면 다른 치료의 길이 닫힌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증상을 다스리는 돌봄을 일찍부터 함께 받는 쪽이 몸 상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고, 그 덕분에 다른 선택지를 논의할 여지가 오히려 남기도 합니다. 두 가지를 양자택일로 두기보다, 통증과 식사·수면을 먼저 안정시키면서 가능성을 알아보는 순서가 현실적입니다.

마지막으로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완치를 장담하거나, 근거 자료 대신 사례담만 보여주거나, 큰 금액을 먼저 결제하라고 요구하거나, 정식 임상시험이라면서 동의서와 연구계획 설명을 제대로 주지 않는 곳은 거리를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정식 임상시험은 참여 전 서면 동의 과정을 거치고, 언제든 중단할 수 있으며, 그만두더라도 기존 진료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습니다. 커뮤니티에서 본 한 사람의 좋아진 이야기는 소중하지만, 그것이 나에게 일어날 확률을 알려주지는 않는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 두면 좋겠습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내용으로, 개별 진료나 진단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치료 방향과 임상시험 참여 여부는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해 결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