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주사를 한두 번 맞고 나면 몸이 조금씩 익숙해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주기가 거듭될수록 더 힘들다고 느끼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두 번째, 세 번째 주기 무렵부터 갑자기 묽은 변이 잦아지고 기력이 쭉 빠지는 일이 생깁니다. 다음 주기 날짜는 코앞인데 집이나 요양병원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여 마음만 급해집니다. 이럴 때 먼저 필요한 것은 '설사를 멈추는 방법'을 찾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설사가 어떤 성격인지 가려 보는 일입니다.
항암제는 빠르게 나뉘고 새로 만들어지는 세포에 영향을 줍니다. 암세포뿐 아니라 입안부터 항문까지 이어지는 소화관의 점막 세포도 그런 세포에 속합니다. 점막이 얇아지면 수분과 영양을 빨아들이는 힘이 떨어지고, 반대로 장으로 물이 새어 나오는 쪽으로 균형이 기울면서 묽은 변이 잦아집니다. 약의 종류에 따라 주사 당일이나 며칠 뒤부터 나타나기도 하고, 표적치료제나 면역항암제처럼 작용 방식이 다른 약에서 또 다른 형태로 생기기도 합니다. 즉 '체하거나 잘못 드셔서'가 아니라 치료 과정에서 흔히 겪는 부작용(side effect) 가운데 하나일 수 있습니다.
다만 항암 중의 모든 설사가 항암제 때문만은 아닙니다. 최근 항생제를 쓴 뒤 생기는 장내 세균 균형의 변화, 감염성 장염, 백혈구가 낮은 시기에 드물게 오는 호중구감소성 장염(neutropenic enterocolitis), 장이 부분적으로 막혀 그 옆으로 묽은 변만 새어 나오는 경우, 함께 먹는 약이나 영양보충 음료·유당(lactose) 때문에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원인에 따라 대처가 달라지기 때문에, 설사를 무조건 멈추는 약(지사제)부터 쓰기 어려운 상황이 있습니다. 열이 있거나, 변에 피가 섞이거나 검게 나오거나, 배가 몹시 아프고 빵빵하게 부르거나, 최근 항생제를 쓴 적이 있다면 스스로 판단하지 말고 먼저 의료진에게 알리는 편이 안전합니다.
연세가 있는 분에게 특히 조심해야 할 부분은 탈수와 전해질(electrolyte) 변화입니다. 며칠 사이에도 소변량이 줄고, 일어설 때 어지럽고, 입안이 마르고, 맥이 빨라지고, 힘이 없어 종일 누워 계시게 됩니다. 이 상태가 이어지면 신장 기능 수치까지 흔들려 다음 주기가 미뤄지거나 용량 조절이 필요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설사 자체'만큼이나 물과 전해질을 어떻게 채우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진료실이나 병동에 전할 때는 느낌보다 숫자가 도움이 됩니다. 하루 몇 번 보시는지, 항암 전 평소와 비교해 몇 번이 늘었는지, 형태가 죽 같은지 물 같은지, 밤에 깨서 화장실에 가시는지, 열은 몇 도인지, 드신 양과 소변 횟수, 체중 변화는 어떤지를 적어 두면 좋습니다. 의료진은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부작용의 정도를 나누고, 다음 치료를 그대로 진행할지 조정할지 판단합니다.
요양병원에 계시면서 그곳에서 약을 처방받게 되는 경우도 흔합니다. 이때는 항암을 담당하는 병원의 정보를 함께 전달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어떤 항암제를 몇 차까지 받았는지, 최근 혈액검사에서 간 수치나 백혈구가 어땠는지, 현재 복용 중인 약과 건강보조식품 목록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간 수치가 올라간 상태라면 약의 선택과 용량, 검사 간격이 달라질 수 있고, 성분이 겹치는 약이 함께 들어가는 상황도 피해야 합니다. 지사제를 이미 받으셨더라도 임의로 횟수를 늘리는 것은 권하지 않습니다.
간 수치 상승 역시 한 가지 이유로만 설명되지 않습니다. 항암제나 함께 쓰는 약, 감염, 담도의 문제, 원래 있던 간질환이나 지방간, 그리고 좋다고 들어 드시던 즙·환·보조식품이 겹쳐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음 주기 전 혈액검사에서 회복 여부를 확인해 그대로 진행할지, 용량을 줄일지, 며칠 미룰지를 정하게 됩니다. 치료가 한 주 미뤄지는 것이 곧 나빠지는 것을 뜻하지는 않으며, 몸이 다음 주기를 견딜 수 있게 만드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식사는 한 번에 많이 드리기보다 소량씩 자주, 미지근한 물이나 의료진이 권한 경구 수분보충 음료를 조금씩 나눠 드리는 편이 부담이 적습니다. 기름지고 아주 단 음식, 카페인, 유제품은 사람에 따라 증상을 키우기도 하니 반응을 보며 조절합니다. 반대로 '아무것도 드리지 않고 굶기는' 방식은 회복을 늦출 수 있어 권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맞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므로 담당 의료진, 영양팀과 상의해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정리하면, 항암 중 설사는 흔하지만 '흔하니 참고 견디는' 증상은 아닙니다. 언제부터, 얼마나,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 기록해 두고, 열·혈변·심한 복통·소변 감소·어지럼처럼 미루기 어려운 신호가 있으면 다음 진료를 기다리지 말고 연락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다음 주기까지 남은 며칠 동안 보호자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약을 구하는 것보다, 지금의 상태를 정확히 전달하는 일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의학 정보를 위한 것이며 개인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실제 증상과 약 복용, 치료 일정에 관한 결정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