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소식을 전하고 싶을 때, 첫 차를 몰고 나선 날, 아이의 입학식이나 오래 준비한 시험에 합격한 순간처럼 기쁜 일이 생기면, 그 기쁨 한가운데에서 문득 먼저 떠난 사람이 사무치게 그리워질 때가 있습니다. 웃다가 눈물이 나고, 좋은 날인데 마음 한쪽이 텅 빈 것 같은 이 감정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사랑했던 사람을 잃은 뒤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사별의 슬픔은 시간표대로 끝나지 않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시간이 흘러 겉으로는 일상을 회복한 뒤에도, 특정한 계기에 슬픔이 다시 밀려오는 일이 흔합니다. 이렇게 잦아든 슬픔이 어떤 순간에 잠시 되살아나는 현상을 흔히 '되살아나는 애도(STUG, 일시적 슬픔의 재상승)'라고 부릅니다. 기일이나 명절뿐 아니라, 결혼·졸업·승진처럼 기쁜 이정표(milestone)가 오히려 강한 방아쇠가 되기도 합니다.
기쁜 순간에 그리움이 더 커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좋은 소식일수록 우리는 그 사람과 가장 먼저 나누고 싶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빠가 있었다면 이 차를 함께 봤을 텐데', '엄마가 이 모습을 봤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사람의 빈자리가 가장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성취의 기쁨과 상실의 슬픔이 한자리에 겹쳐 오는 것입니다.
이럴 때 마음속으로 혹은 소리 내어 고인에게 소식을 전하고, 납골당이나 산소를 찾아 '나 이만큼 해냈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결코 미련이나 '놓지 못함'이 아닙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떠난 사람과 마음의 연결을 이어 가는 것을 '지속되는 유대(continuing bonds)'라고 부르며, 억지로 관계를 끊어 내는 것보다 오히려 건강한 애도 방식일 수 있다고 봅니다. 편지를 쓰거나, 사진과 유품을 곁에 두거나, 기쁜 날 마음속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 모두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밀려오는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감정은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웃어도 되고, 그러다 울어도 됩니다. 좋은 날 떠난 사람을 떠올린다고 해서 그 기쁨이 가짜가 되는 것도, 슬퍼한다고 해서 잘 살아 내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두 감정이 함께 있는 그대로를 허용하는 것이 회복에 도움이 됩니다.
다만 슬픔이 시간이 지나도 전혀 옅어지지 않고, 일상생활·수면·식사·대인관계가 오래도록 무너진 채 이어지거나, 깊은 우울감과 무기력, 스스로를 해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이런 상태가 여러 달 이상 지속된다면 '지속성 비탄 장애(prolonged grief disorder)'처럼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한 경우일 수 있으니, 정신건강 전문가나 애도 상담을 찾는 것을 주저하지 마세요.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를 전하기 위한 것이며 전문적인 진료나 상담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슬픔이 오래 지속되거나 일상에 큰 지장을 준다면 의료진이나 정신건강 전문가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