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을 오래 받다 보면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 모처럼 미용실에 가는 날도 옵니다. 그런데 그런 좋은 날, 누군가 "무슨 암이냐, 몇 기냐,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냐"고 캐묻고는 "결국 음식 때문"이라거나 "붉은 고기를 많이 먹어서 그렇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무너졌다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마치 '네가 관리를 못해서 암에 걸린 것'이라는 비난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 사람의 암을 특정 음식 하나, 습관 하나의 '탓'으로 단정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암은 한 가지 원인으로 생기는 병이 아닙니다. 나이, 타고난 유전적 소인, 환경, 생활 습관, 그리고 세포가 분열할 때 우연히 생기는 DNA 복제 오류(random mutation)까지 여러 요인이 겹쳐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집니다. 특히 세포가 평생 수없이 분열하는 과정에서 '운'에 가까운 우연한 돌연변이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술·담배를 멀리하고 채소를 챙겨 먹으며 조심스럽게 살아온 사람도 암에 걸릴 수 있고, 반대로 거칠게 산 사람이 평생 걸리지 않기도 합니다.

물론 생활 습관이 위험도(risk)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가공육이나 붉은 고기의 과다 섭취, 흡연, 과음, 비만 등은 통계적으로 일부 암의 발생 확률을 '조금' 높입니다. 그러나 이는 수많은 사람을 모아 비교했을 때 드러나는 '집단의 경향'이지, 이미 진단받은 한 개인의 암을 설명해 주는 단정적 답이 아닙니다.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과 '그 음식이 너의 암을 일으켰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위험을 '높인다'와 '원인이다' 사이에는 큰 거리가 있습니다.

스스로를 탓하는 마음은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책감과 우울은 식사, 수면, 치료 의지에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이미 일어난 일의 원인을 곱씹기보다, 지금 내 몸과 마음을 돌보는 데 힘을 쓰는 편이 훨씬 이롭습니다. 누군가의 무례한 '원인 추궁'에는 굳이 길게 해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원인은 한 가지로 말하기 어렵대요" 정도로 짧게 끊거나, 화제를 바꾸거나, 마음이 상하면 자리를 정리해도 괜찮습니다. 나를 지치게 하는 대화를 끝낼 권리는 환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궁금한 점이 있다면 인터넷이나 주변의 단정적 주장보다 담당 의료진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것이며 개별 진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본인의 암 종류와 위험요인, 생활 관리에 대한 판단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