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아이를 둔 부모에게 "엄마 아빠도 좀 쉬세요"라는 말은 솔직히 잔인하게 들릴 때가 있다. 병실 보호자 침대에서 쪽잠을 자고, 검사 일정에 맞춰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다른 형제자매까지 챙기다 보면 정작 자기 끼니는 건너뛰기 일쑤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면 어느 순간 눈물도 안 나고 화도 안 나는, 그냥 멍한 상태가 찾아온다. 이게 바로 돌봄 번아웃의 신호다. 게으르거나 약해서가 아니라, 사람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겼기 때문에 나타나는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걸 먼저 알아둘 필요가 있다.
번아웃은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고, 사소한 일에 짜증이 솟구치고, 아이한테 미안한 마음과 짜증이 동시에 들어 또 죄책감에 빠지는 식으로 서서히 쌓인다. 입맛이 없거나 반대로 폭식을 하고, 두통이나 소화불량처럼 몸으로 먼저 신호가 오기도 한다. 한 부모는 "아이가 웃는데도 같이 못 웃겠더라"는 말을 했는데, 감정이 무뎌지는 그 지점이 사실 꽤 위험한 단계다. 이쯤 되면 의지로 버티는 걸 멈추고, 외부의 도움을 끌어와야 할 시점이라고 봐야 한다.
막상 도움을 찾으려 하면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하다. 가장 가까운 출발점은 치료받는 병원의 의료사회복지팀이다.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에는 사회복지사가 있어서, 경제적 지원 연계부터 심리상담, 가족 돌봄 프로그램까지 상담해 준다. 소아암을 비롯한 소아 중증질환은 정부와 여러 재단에서 의료비·간병·생활비를 지원하는 제도가 있는데, 이런 정보를 혼자 검색하기보다 사회복지팀에 한번 물어보면 훨씬 빠르다. "이런 것까지 부탁해도 되나" 싶은 일도 일단 말을 꺼내 보는 게 좋다. 그게 그분들 일이다.
형제자매와 부부 사이도 챙겨야 할 부분이다. 환아에게 시선이 쏠리는 동안 다른 아이는 "나는 투명인간 같다"고 느끼기 쉽고, 부부는 각자 지쳐서 서로를 탓하는 악순환에 빠지기도 한다. 비슷한 처지의 부모들이 모이는 환우 가족 모임이나 온라인 커뮤니티가 의외로 큰 힘이 된다. 같은 길을 먼저 걸어본 사람의 한마디가, 주변의 어설픈 위로보다 훨씬 정확하게 마음을 만져 주기 때문이다. 단기 돌봄 서비스나 가사·간병 지원을 이용해 단 몇 시간이라도 온전히 비우는 것도 사치가 아니라 지속을 위한 정비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그리고 부모 자신의 마음 상태가 너무 가라앉아 일상이 흔들린다면, 그건 상담을 받아야 할 신호다. 우울이나 불안이 깊어지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영역으로 넘어간다. 정신건강복지센터나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문을 두드리는 일을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다. 비행기에서 산소마스크를 보호자가 먼저 쓰라고 안내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부모가 숨을 쉬어야 아이도 끝까지 지킬 수 있으니까.
여기 적은 내용은 일반적인 안내일 뿐이라, 우리 아이 상황과 가족 형편에 맞는 지원은 치료 중인 병원의 의료진이나 사회복지팀과 꼭 상의해서 결정하시길 바란다. 오늘 하루도 버텨낸 당신, 정말 애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