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식이 결정되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솔직히 말하면 막막함이었다. 의료진은 자기 세포를 미리 뽑아뒀다가 고용량 항암으로 골수를 비운 뒤 다시 넣어주는 거라고 설명해줬는데, 머리로는 이해가 돼도 옆에서 지켜보는 보호자 입장은 또 다르더라. 무균실 앞에서 손 소독을 몇 번씩 하고, 가운 갈아입고, 면회 시간 지키고. 그 단순한 동작들이 처음엔 어색하다가 어느 순간 몸에 배었다.
제일 힘든 구간은 세포를 넣고 나서 며칠 뒤부터였다. 백혈구 수치가 바닥까지 떨어지는 시기가 오는데, 이때는 작은 감염도 위험하다고 해서 정말 예민하게 굴 수밖에 없었다. 입안이 헐어서 물 한 모금 삼키는 것도 아파하고, 입맛은 완전히 사라지고. 점막이 헐어버리니 평소 좋아하던 음식을 가져가도 고개를 젓는 날이 많았다. 그럴 땐 억지로 먹이려 들지 않는 게 낫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차게 식힌 죽이나 부드러운 걸 아주 조금씩, 그것도 본인이 원할 때만.
수치가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안도감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매일 아침 회진 때 숫자 하나에 온 가족의 기분이 출렁였으니까. 생착이 되고 있다, 골수가 다시 일을 시작한다는 신호라고 했다. 그때부터는 회복이 직선처럼 쭉 가는 게 아니라 올랐다 내렸다 하면서 천천히 좋아진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중요했다. 컨디션 좋은 날 무리하면 다음 날 꼭 탈이 났다.
퇴원하고 집에 와서가 또 다른 시작이었다. 면역이 한참 약한 상태라 사람 많은 곳은 피하고, 손 씻기랑 음식 위생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생채소나 덜 익힌 건 한동안 멀리하고, 마스크 챙기고, 미열만 나도 체온계부터 들었다. 처음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가도, 면역세포가 새로 자라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설명을 듣고 나니 조심하는 게 당연해졌다. 예방접종도 일정에 맞춰 다시 받아야 한다고 해서 그 부분도 잊지 않으려 적어뒀다.
돌아보면 보호자로서 제일 도움이 됐던 건 거창한 게 아니었다. 그날그날 수치랑 증상, 먹은 양을 짧게라도 적어둔 메모. 그게 진료 때 의료진한테 상황을 정확히 전달하는 데 정말 유용했다. 그리고 환자만큼 보호자도 지친다는 것. 나도 가끔은 바깥바람 쐬고 잠깐 쉬어야 더 오래 곁을 지킬 수 있더라. 무리해서 같이 무너지면 아무한테도 좋을 게 없다는 걸 그때 배웠다.
치료 과정과 회복 속도는 사람마다 다 다르니, 여기 적은 건 어디까지나 한 사람의 경험일 뿐이다. 본인 상태에 대한 판단과 결정은 꼭 담당 의료진과 상의해서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