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가 끝나고 나면 몸은 한결 가벼워지는데, 정작 밥상 앞에서 막막해지는 분들이 많다. 늘 먹던 국이 갑자기 쇠 맛이 나고, 좋아하던 과일이 밍밍하게 느껴진다. 어떤 날은 모든 음식에서 종이 씹는 듯한 맛만 남기도 한다. 두경부 부위에 방사선이나 항암을 받은 뒤 미각이 흔들리는 건 꽤 흔한 일이다. 침샘과 혀의 미뢰가 영향을 받으면서 단맛, 짠맛, 쓴맛을 느끼는 회로가 잠시 헝클어지는 셈인데, 본인 잘못도 아니고 식욕이 없어진 것도 아니다. 그저 감각이 다르게 들어오는 것뿐이다.
이 시기를 견디는 데 의외로 도움이 되는 건 '맛'보다 '질감'과 '온도'다. 혀가 맛을 잘 못 잡을 때, 부드럽고 촉촉한 음식은 그나마 거부감이 덜하다. 죽이나 수프처럼 넘기기 쉬운 것부터 시작하되, 거기에 들기름 한 숟갈이나 곱게 간 견과를 더하면 입안에 머무는 느낌이 풍성해진다. 반대로 너무 뜨겁거나 차가운 음식은 가뜩이나 예민해진 점막을 자극하니, 미지근하게 식혀 먹는 편이 한결 편하다. 막상 해보면 같은 음식도 온도만 바꿨을 뿐인데 먹을 만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쇠 맛, 즉 금속 맛이 입에 돈다면 스테인리스 수저 대신 플라스틱이나 나무 수저를 써보길. 사소해 보여도 차이가 난다. 고기에서 비린 금속 맛이 강하게 난다면 무리해서 삼키기보다, 달걀이나 두부, 생선처럼 향이 순한 단백질로 잠시 갈아타도 괜찮다. 단백질은 회복에 꼭 필요하지만 출처가 소고기일 필요는 없으니까. 신맛이 입맛을 살려준다면 레몬즙이나 식초를 살짝 떨어뜨려 보고, 입이 너무 쓰다면 조리 전 재료를 잠깐 물에 담가두거나 단맛을 약간 더하는 것도 방법이다. 정답은 사람마다 다르다. 오늘 맞던 게 내일은 안 맞을 수도 있어서, 한 가지에 매달리기보다 그날그날 몸이 받는 걸 골라 먹는다는 마음이 편하다.
입맛이 없을수록 무서운 건 체중이 슬금슬금 빠지는 일이다. 맛이 안 느껴진다고 끼니를 거르다 보면 기운이 떨어지고 회복도 더뎌진다. 그래서 '많이'보다 '자주'를 권한다. 한 번에 한 그릇은 부담스러워도, 작은 그릇으로 서너 시간마다 조금씩 나눠 먹으면 총량은 비슷하게 채울 수 있다. 입이 깔깔할 땐 물을 자주 머금어 입안을 촉촉하게 해주고, 식사 사이사이 우유나 두유, 영양 음료처럼 마시는 형태로 열량을 보태는 것도 좋다. 향이 강한 양념이 부담된다면 굳이 화려하게 차릴 필요 없다. 담백하고 부드러운 한 입이 오늘 들어갔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한 가지 위로가 되는 건, 이 변화가 대개 영원하지 않다는 점이다. 침샘과 미뢰가 회복되는 속도는 제각각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제맛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은 자책하지 말고, 먹을 수 있는 걸 먹을 수 있는 만큼 먹는다는 가벼운 목표면 된다. 어제보다 한 숟갈 더 들어갔다면 그게 회복이다. 다만 입이 너무 헐어 삼키기 힘들거나, 체중이 빠르게 줄거나, 물조차 넘기기 어렵다면 혼자 버티지 말고 담당 의료진이나 영양 상담을 꼭 찾으시길. 옆에서 거드는 이야기일 뿐이니, 실제 식단은 본인 상태를 아는 전문가와 맞춰 정하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