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 단어를 들은 건 회사 건강검진 결과를 다시 보러 간 날이었다. 백혈구 수치가 너무 높다고,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별일 아니겠지 하며 갔는데, 며칠 뒤 만성골수성백혈병(chronic myeloid leukemia, CML)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백혈병이라는 단어 앞에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아픈 데도 없는데, 멀쩡히 출근하던 사람인데.
의사 선생님은 의외로 담담하게 설명했다. 다행히 만성기에 일찍 발견됐고, 요즘은 매일 먹는 표적치료제로 조절하는 사람이 많다고. 필라델피아 염색체라는 비정상 유전자가 만드는 신호를 막는 약(이매티닙 같은 티로신키나아제 억제제)을 꾸준히 먹으면 된다는 말이었다. 입원도, 머리 빠지는 항암도 아니라는 게 그땐 잘 믿기지 않았다.
약을 먹기 시작하고 처음 몇 주는 솔직히 힘들었다. 눈가가 붓고, 다리에 쥐가 자주 나고, 속이 메스꺼워 밥이 잘 안 넘어갔다. 약을 끊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같은 병을 오래 앓은 분들의 글을 찾아 읽었다. 시간이 지나니 몸이 약에 적응했는지 부작용은 조금씩 옅어졌고, 식사 시간과 약 먹는 습관을 맞추는 요령도 생겼다.
제일 떨리는 건 역시 정기검사 날이다. 몇 달에 한 번 피를 뽑아 그 비정상 유전자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 보는 분자유전검사를 한다. 결과지에 적힌 숫자가 내려갈 때의 안도감, 조금 올라갔을 때의 불안함. 그 작은 숫자에 일희일비하는 내가 우습기도 했지만, 그게 내 몸 안에서 벌어지는 싸움의 성적표라고 생각하면 도저히 무심할 수가 없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약을 먹는다. 처음엔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게 형벌처럼 느껴졌는데, 지금은 그냥 양치질 같은 하루의 루틴이 됐다. 수치가 아주 깊이 가라앉아 한동안 약을 줄이거나 쉬어보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지만, 그건 의사와 충분히 상의해 결정할 일이라 나는 아직 내 길을 가는 중이다.
돌아보면 이 병은 내게서 많은 걸 빼앗아 가진 않았다. 다만 몸을 함부로 굴리지 않는 법, 검사 결과 앞에서 의연해지는 법, 그리고 별것 아닌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귀한지를 가르쳐줬다. 비슷한 진단을 받고 막막한 분이 있다면, 너무 겁먹지 말라고, 약을 잘 챙기고 검사를 거르지 않으면 일상은 생각보다 멀쩡히 굴러간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 글은 한 환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나눈 것으로, 의학적 조언이나 치료 방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증상과 치료에 관한 결정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