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 관을 넣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통증이 아니라 '그럼 말은 어떻게 하나'였다. 기관절개를 하면 숨길이 입과 코를 거치지 않고 목에 낸 구멍으로 바로 통하기 때문에, 그 위를 지나며 소리를 만들던 성대가 한동안 일을 못 하게 된다. 수술 다음 날 아침, 입을 벌려 무언가 말하려는데 바람 새는 소리만 났을 때의 그 막막함을 아직도 기억한다.
처음 며칠은 모든 걸 글씨로 했다. 머리맡에 작은 노트와 펜을 두고, 물 한 잔 달라는 말도 적어서 보여줬다. 손이 떨려서 글씨가 엉망일 때는 휴대폰 화면에 큼지막하게 타이핑해 간호사에게 들이밀었다. 가족이 내 표정과 손짓을 점점 잘 읽게 되면서, 말 없이도 통하는 우리만의 신호가 하나둘 생겨났다.
가장 적응이 안 됐던 건 가래였다. 평소라면 기침 한 번으로 넘길 것이 목의 구멍 쪽으로 자꾸 차올라서, 석션이라는 가는 관으로 빨아내야 했다. 처음엔 무섭고 사레들린 것처럼 괴로웠는데, 간호사가 알려준 대로 숨을 고르고 타이밍을 맞추니 조금씩 견딜 만해졌다. 관 주위 피부를 깨끗이 닦고 거즈를 갈아주는 일도, 며칠 지나니 양치처럼 익숙한 일과가 됐다.
전환점은 말하기 밸브를 끼우게 되면서 찾아왔다. 숨을 내쉴 때 공기가 다시 성대 쪽으로 흐르도록 도와주는 작은 장치인데, 처음 그걸 달고 '아' 소리를 냈을 때 옆에 있던 아내가 눈물을 보였다. 내 목소리가, 비록 갈라지고 작았지만, 몇 주 만에 처음으로 방 안에 울린 순간이었다. 별것 아닌 '고마워' 한마디를 소리 내어 말하는 게 그렇게 벅찰 줄 몰랐다.
그 뒤로는 언어치료사와 함께 천천히 연습했다. 한 번에 길게 말하려 욕심내면 금세 지쳤기 때문에, 짧게 끊어 말하고 중간에 숨을 채우는 요령을 배웠다. 조용한 방에서 또박또박 시작해, 점점 식탁에서 가족과 짧은 대화를 나누는 데까지 왔다. 예전의 또렷한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내 입으로 내 생각을 전한다는 사실만으로 하루하루가 달라졌다.
지금 돌아보면, 목소리를 잃었던 그 몇 달은 끔찍하기만 한 시간은 아니었다. 말이 막히니 오히려 표정과 눈빛, 손을 잡는 일에 더 마음을 쓰게 됐고, 곁에 있어 준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또렷이 남았다. 같은 길을 막 시작하는 분이 있다면, 지금의 막막함이 끝이 아니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이 글은 한 사람의 개인적인 경험을 나눈 것으로, 모든 환자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으며 의학적 조언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본인의 상태에 맞는 판단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