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소암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보다, 항암을 시작한다는 말이 더 무서웠다. 수술은 끝나면 그만이지만 항암은 회차가 정해져 있어서, 앞으로 받아야 할 숫자가 머릿속에 떡 박혀 있었다. 1차, 2차… 6차. 그 여섯 번이 그렇게 길 줄은 몰랐다.

머리카락은 2차 무렵부터 빠지기 시작했다. 베개에 한 움큼씩 묻어나는 걸 보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결국 미용실에서 짧게 밀어 버렸는데, 거울 속 내 모습이 낯설어서가 아니라 '아, 진짜 환자가 됐구나' 싶어서 눈물이 났다. 그래도 모자랑 두건을 몇 개 사 두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빠질 걸 받아들이고 나니 매일 신경 쓰던 일이 하나 줄었다.

제일 견디기 힘들었던 건 체력이었다. 첫 회차 때는 며칠 누워 있으면 회복이 됐는데, 회차가 거듭될수록 돌아오는 데 시간이 점점 더 걸렸다. 4차쯤 되니 빨래를 널다가도 주저앉고 싶었다. 몸이 내 것 같지 않은 느낌, 마음은 멀쩡한데 몸이 안 따라 주는 그 답답함이 제일 서러웠다.

입맛도 자꾸 변했다. 평소 좋아하던 음식에서 쇠 맛이 나고, 냄새만 맡아도 속이 울렁거리는 날이 있었다. 그럴 때는 무리해서 챙겨 먹기보다 그나마 넘어가는 걸 조금씩 자주 먹었다. 시원한 과일 몇 조각, 미지근한 죽 한 그릇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손끝과 발끝이 저릿저릿한 증상도 회차가 쌓이면서 생겼는데, 이건 담당 선생님께 꼭 말씀드리라고 들어서 진료 때마다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지나고 보니 가장 큰 힘이 된 건 거창한 게 아니었다. 같은 병실 분이 건넨 사탕 하나, 채혈하는 간호사 선생님의 '오늘 수치 괜찮네요' 한마디, 남편이 말없이 데워다 준 물 한 컵. 이런 사소한 것들이 하루를 버티게 했다. 멀리 있는 응원보다 곁에서 같이 숨 쉬어 주는 사람이 컸다.

6차 마지막 항암을 끝내고 나오던 날, 박수를 받거나 한 건 아니었다. 그냥 늘 하던 대로 수액을 맞고, 늘 가던 길로 집에 왔다. 다만 차 안에서 창밖을 보는데 햇빛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다. 끝났다고 모든 게 단번에 좋아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 여섯 번을 내가 통과했다는 사실이 스스로 대견했다. 지금 그 한가운데 있는 분이 있다면, 너무 멀리 보지 말고 오늘 한 회차만 무사히 넘기자고 말해 주고 싶다.

이 글은 한 사람의 개인적인 경험을 나눈 것으로, 의학적 조언이나 진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증상이나 치료에 대한 결정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