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치료를 받아 온 가족이 재활운동 도중 몇 걸음 만에 '어지럽다'며 멈춰 서면, 곁에서 보는 사람은 그 말을 의지의 문제로 읽기 쉽습니다. 그러나 어지럼은 한 단어일 뿐, 몸 안에서는 서로 다른 길로 만들어집니다. 크게 보면 세 갈래입니다. 첫째는 주변이 빙글 도는 느낌인 현훈(vertigo)으로, 균형을 담당하는 속귀나 그 신경 쪽 문제와 관련될 때가 많습니다. 둘째는 눈앞이 하얘지고 아득해지며 식은땀이 나는 전실신(presyncope)으로, 혈압·맥박·빈혈처럼 뇌로 가는 혈류와 얽혀 있습니다. 셋째는 도는 느낌은 없는데 서 있으면 중심이 흔들리는 불균형(disequilibrium)으로, 근력 저하나 발바닥 감각의 둔해짐이 배경일 수 있습니다. 진료실에서 첫 질문이 '어떻게 어지러우세요'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긴 입원과 오랜 침상 생활을 지나온 몸에서는 이 세 갈래가 섞여 나타나는 일이 흔합니다. 누워 지내는 기간이 길어지면 자세를 바꿀 때 혈압을 붙잡아 주는 조절 능력이 둔해지고(탈조건화, deconditioning), 다리와 몸통 근육이 빠르게 줄어듭니다. 백혈병 유지요법에서 쓰이는 빈카알칼로이드 계열 항암제(vincristine 등)는 손발의 감각신경에 영향을 줄 수 있어, 발바닥에서 올라오는 '바닥을 딛고 있다'는 정보가 약해지면 눈을 감거나 어두운 곳에서 더 흔들립니다. 스테로이드를 오래 쓰면 허벅지처럼 몸통에 가까운 근육이 먼저 약해지기도 합니다. 즉 어지럼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 반드시 '나아지지 않는 병' 때문만은 아니며, 여러 원인이 겹쳐 있을 가능성을 함께 봅니다.
기립성 저혈압(orthostatic hypotension)은 누웠다 일어선 뒤 3분 이내에 수축기 혈압이 약 20mmHg, 이완기 혈압이 약 10mmHg 이상 떨어지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집에서도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5분 이상 편히 누운 뒤 혈압과 맥박을 재고, 일어선 다음 1분과 3분에 같은 자리에서 다시 잽니다. 이때 혈압이 떨어지면서 맥박이 함께 오르는지, 아니면 맥박이 거의 그대로인지도 적어 두면 진료에서 쓰임새가 큽니다. 낙상 위험이 있으니 반드시 곁에 사람이 있는 상태에서, 잡을 곳이 있는 자리에서 재는 것이 안전합니다.
약을 1년 넘게 먹고도 변화가 없다면, 약이 듣지 않는다고 결론짓기 전에 다시 확인해 볼 것들이 있습니다. 혈색소 수치(빈혈), 하루 수분·식사량과 탈수, 함께 복용 중인 다른 약(이뇨제·혈압약·항구토제·수면제·항우울제 등)의 영향, 스테로이드를 줄이는 과정에서 생기는 변화, 전해질과 갑상선, 감염이나 미열의 동반 여부가 대표적입니다. 어지럼이 서 있을 때만 오는지, 앉아 있거나 누워 있을 때도 오는지는 특히 중요한 단서입니다. 앉은 자세에서도 어지럽다면 자세와 무관한 다른 갈래를 함께 살펴야 합니다.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재활을 이어가기보다 먼저 진료를 받는 편이 안전합니다. 실제로 의식을 잃었을 때, 새로 생긴 심한 두통이나 구토, 한쪽 팔다리 힘 빠짐·발음이 뭉개짐·물체가 둘로 보임, 가슴 두근거림이나 흉통, 발열, 검은 변이나 눈에 띄는 창백함, 넘어져 머리를 부딪혔을 때입니다. 치료 중인 몸에서는 발열 하나만으로도 즉시 확인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운동을 다시 붙이는 순서는 '거리'가 아니라 '자세 단계'로 잡으면 덜 부딪힙니다. 누워서 발목을 위아래로 움직이고 다리를 들어 보는 단계,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흔들림 없이 버티는 단계, 붙잡고 일어서서 서 있는 시간을 늘리는 단계, 그다음 걷기 순입니다. 각 단계에서 어지럼 없이 버티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보다 먼저입니다. 자세를 바꿀 때는 눕기에서 곧장 일어서지 말고 앉아서 1분쯤 머문 뒤 서고, 일어선 직후 잠시 제자리에 서 있다가 걷습니다. 압박스타킹, 수분·염분 섭취, 침대 머리 쪽을 약간 올려 자는 방법 등은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심장·신장 상태와 복용 약에 따라 달라지므로 담당 의료진과 먼저 상의해야 합니다.
거부하는 모습을 '의지가 없다'로 읽기 전에, 어지럼은 통증만큼이나 무서운 감각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대화가 달라집니다. 한 번 크게 휘청였던 경험이 있으면 몸은 그 자세 자체를 피하려 합니다. 기억력 저하나 예전 같지 않은 감정 반응은 오랜 입원, 스테로이드, 회복기 우울, 섬망을 앓고 난 뒤의 여파와 겹칠 수 있어 어지럼과 따로 평가해 볼 만합니다. 그리고 매일 부축하는 보호자의 지침과 짜증 역시 참아야 할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진료실에서 꺼낼 수 있는 주제입니다.
진료 시간이 짧을 때는 종이 한 장이 큰 몫을 합니다. 어지럼이 온 시각과 상황(일어난 직후·걷는 중·식사 뒤·약 먹은 뒤), 지속 시간, 동반 증상, 누웠을 때와 선 뒤 1분·3분의 혈압과 맥박, 그날 복용한 약, 넘어질 뻔한 횟수를 2주만 적어 가도 원인을 좁히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것으로 개별 환자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증상의 원인과 대처는 사람마다 다르므로, 실제 결정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