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가 한 단락을 지나거나 살림을 정리하다 보면, 뜯지 않은 영양보충음료 한 박스, 경장영양식 한 상자, 약국에서 사 둔 소화효소제가 고스란히 남는 일이 흔합니다. 값이 만만치 않았던 물건이라 그냥 버리기 아깝고, 지금 힘들어하는 다른 분에게 건네면 좋겠다는 마음도 자연스럽게 듭니다. 그런데 많은 환우 커뮤니티가 '나눔 금지'를 회칙으로 두고 있고, 그 규칙에는 인심이 아니라 안전과 법적인 이유가 깔려 있습니다.

먼저 약부터 보겠습니다. 약국에서 산 소화효소제(판크레아틴 등 pancreatic enzyme)는 겉보기에 소화를 돕는 단순한 약 같지만, 실제로는 사람마다 필요한 양이 크게 다릅니다. 췌장이나 담도의 기능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지, 한 끼에 얼마나 먹는지, 지방이 많은 식사인지에 따라 용량이 달라지고, 돼지 유래 성분에 대한 알레르기나 함께 복용 중인 다른 약과의 관계도 살펴야 합니다. 게다가 남이 건넨 약은 그동안 어떤 온도와 습도에서 보관됐는지, 남은 유효기간이 얼마인지 받는 쪽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국내에서도 약사가 아닌 개인이 의약품을 넘겨주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봅니다. 무료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커뮤니티가 일괄로 막아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음은 '이게 식품인가 약인가'를 갈라 보는 일입니다. 병원과 약국에서 흔히 쓰는 영양보충음료나 경장영양식 상당수는 의약품이 아니라 특수의료용도식품(medical food)으로 분류됩니다. 반면 약국 진열대에서 산 소화효소제는 일반의약품입니다. 라벨을 보면 '의약품' 표시가 있는지, 아니면 '식품유형' '영양성분표'가 적혀 있는지로 대개 구분이 됩니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의 처리 방법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의약품으로 남은 것은 폐의약품으로 내놓는 것이 원칙입니다. 약국, 보건소, 주민센터 등에 폐의약품 수거함이 놓여 있고, 지역에 따라 전용 회수봉투나 우체통 회수를 운영하는 곳도 있습니다. 알약은 포장째, 물약은 한 병에 모아서 등 세부 안내가 지자체마다 조금씩 달라 미리 한 번 확인해 두면 헛걸음을 줄일 수 있습니다. 변기에 흘려보내거나 일반 쓰레기에 섞는 방식은 환경에 남기 때문에 권하지 않습니다. 식품으로 분류되는 영양음료는 유효기간이 넉넉하고 미개봉이라면 가정에서 소비하거나, 지역 폐기 기준에 따라 내용물과 용기를 나눠 배출하면 됩니다.

그래도 남은 것을 쓸모 있게 쓰고 싶다면, 다니던 병원의 영양팀이나 사회사업실에 한 번 문의해 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기관마다 규정이 달라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많지만, 최소한 현재 상황에서 가능한 선택지를 알려 줍니다. 또 처방으로 받아 온 경장영양제가 계속 남는다면, 다음 진료 때 '이만큼 남았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처방 양을 조절해 불필요한 부담과 폐기를 함께 줄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물건을 정리하는 일은 단순한 살림이 아니라 마음이 많이 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상자를 열었다 다시 닫게 되는 날이 있어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급하지 않다면 서두르지 말고, 유효기간이 임박한 것부터 하나씩 처리해 나가는 정도로도 충분합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것이며 진료나 상담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복용 중인 약의 조절, 남은 약과 영양제의 처리 방법은 담당 의료진이나 약사와 상의해 결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