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이나 병동에서 회복하는 며칠 사이, 평소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환자가 있습니다. 갑자기 일어나 앉으려 하고, 보이지 않는 사람이 앞에 있다고 하고, 오늘이 며칠인지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 혼란스러워합니다. 낮에는 비교적 또렷하다가 해가 지면 심해지기도 합니다. 의료진은 이런 상태를 섬망(delirium)이라고 부릅니다. 성격이 변한 것도, 정신질환이 새로 생긴 것도, 일부러 고집을 부리는 것도 아닙니다. 수술과 마취, 통증, 감염 같은 큰 부담을 한꺼번에 받은 뇌가 일시적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급성 뇌기능 장애'에 가깝습니다.
섬망의 특징은 짧은 시간 안에 주의력과 의식이 흐려지고, 하루 안에서도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되풀이한다는 점입니다. 방금 설명을 듣고 이해했다가 5분 뒤 같은 이야기를 처음 듣는 것처럼 반응하는 일도 흔합니다. 크게 보면 세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소리를 내고 일어나려 하며 관을 잡아당기는 과다활동형(hyperactive), 반대로 반응이 느리고 하루 종일 처져 있어 '기운이 없나 보다'라고 지나치기 쉬운 저활동형(hypoactive), 그리고 둘이 번갈아 나타나는 혼합형입니다. 저활동형은 눈에 덜 띄어 발견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인은 대개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겹칩니다. 고령, 이전부터 있던 인지기능 저하, 잘 안 들리거나 잘 안 보이는 상태 같은 '바탕 요인' 위에, 오래 걸린 수술과 마취, 통증, 출혈과 수혈, 감염과 발열, 저산소증, 전해질·혈당 이상, 탈수, 변비와 소변 정체, 일부 약물(진정제, 항콜린 작용이 있는 약, 스테로이드, 마약성 진통제), 평소 마시던 술이나 담배의 갑작스러운 중단, 밤낮 구분이 사라진 병실 환경과 수면 부족 같은 '방아쇠'가 더해집니다. 그래서 의료진은 섬망이 보이면 진정제를 쓰는 것보다 먼저 되돌릴 수 있는 원인이 있는지를 찾습니다. 혈액검사, 산소포화도, 소변량, 감염 여부, 복용 중인 약 목록을 다시 살피는 과정이 그것입니다. 갑작스러운 마비나 한쪽 힘 빠짐, 동공 차이처럼 뇌졸중을 의심할 만한 변화가 있는지도 함께 확인합니다.
가족이 가장 놀라는 장면 중 하나는 손발을 묶는 신체보호대(억제대)입니다. 특히 다리나 팔에서 조직을 떼어 옮기는 유리피판(free flap) 재건 수술, 구강·혀 수술, 기관절개관·배액관·중심정맥관이 있는 상황에서는 환자가 무의식중에 몸을 크게 움직이거나 관을 잡아당기면 수술 부위와 이식한 조직의 혈류에 지장이 생길 수 있습니다. 보호대는 그런 위험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이며, 필요한 시간 동안만, 자주 상태를 확인하면서 쓰는 것이 원칙입니다. 곁을 지키는 사람이 있어 환자가 진정되면 보호대를 줄이거나 풀 수 있는 경우도 있으니, 주치의·간호사와 '언제, 어디까지' 사용할지 상의해 두면 좋습니다.
약보다 먼저 권해지는 방법들이 있습니다. 낮에는 커튼을 열어 햇빛을 들이고 밤에는 조명과 소음을 줄여 밤낮의 리듬을 되살리기, 안경과 보청기를 다시 착용하게 하기, 시계와 달력을 눈에 보이는 곳에 두고 '지금 몇 시이고 여기는 어느 병원이며 아버지는 언제 어떤 수술을 받으셨다'고 차분히 반복해 알려주기, 가족 사진처럼 익숙한 물건을 곁에 두기, 통증과 변비·소변 정체를 방치하지 않기, 의료진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일찍 앉히고 움직이게 하기 등입니다. 환자가 말을 할 수 없는 상태라면 필담 노트, 글자판, '예/아니오' 카드처럼 의사를 표현할 통로를 만들어 주는 것 자체가 불안을 크게 줄여 줍니다.
환각이나 잘못된 믿음을 말할 때는 논쟁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그런 건 없다'고 다투면 환자는 자신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고 느껴 더 흥분합니다. 대신 무섭거나 답답한 감정 자체는 인정해 주고('많이 무서우셨겠어요'), 지금 안전한 곳에 있다는 사실을 짧고 단순한 문장으로 알려준 뒤 다른 화제로 부드럽게 옮기는 방식이 권해집니다. 위험한 행동이 계속되거나 환자와 주변이 다칠 수 있을 때는 의료진 판단에 따라 약을 쓰기도 하지만, 이때도 목표는 '깊이 재우는 것'이 아니라 안전을 확보하며 원인을 함께 교정하는 것입니다.
경과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많은 경우 며칠에서 몇 주에 걸쳐 좋아지지만, 그 사이에도 하루하루 기복이 있어 '어제는 괜찮았는데 오늘 다시 심하다'는 일이 흔합니다. 고령이거나 이전부터 기억력 저하가 있었다면 회복이 더디고 일부 증상이 오래 남기도 합니다. 환자 본인은 그 시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거나 조각조각 기억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나중에 그때의 일로 환자를 탓하지 않아도 됩니다.
마지막으로 곁을 지키는 사람의 몫이 있습니다. 밤새 몸으로 붙들다 보면 화가 났다가 곧 미안해지는 감정이 반복되는데, 이는 아주 흔한 반응이지 가족의 부족함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24시간을 감당하기보다 가족끼리 교대 시간을 정하고, 병동 간호사와 야간에 무엇을 어떻게 관찰할지, 간병 인력을 어떻게 쓸 수 있는지 미리 의논해 두는 편이 환자에게도 더 안전합니다. 잠을 못 잔 보호자는 위험 신호를 놓치기 쉽습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의학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 개별 환자의 진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환자의 상태 변화, 보호대 사용, 약물 조정에 관한 판단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해 결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