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치료를 두고 갈림길에 섰을 때, 주변에서 "실패해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 때만 시작하라"는 말을 듣는 일이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말을 들은 뒤 오히려 결정이 더 어려워졌다고 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해보지 않은 일의 결과는 누구도 미리 알 수 없는데, '후회하지 않을 자신'은 대체 어디서 생기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어떤 치료가 옳다고 말하려는 글이 아니라, 되돌리기 어려운 결정을 앞두었을 때 결정의 과정을 어떻게 정리하고 남겨 둘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먼저 알아 두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개념이 있습니다. 의료에서는 치료를 고르고 난 뒤 '다른 선택을 했어야 했다'는 생각에 오래 붙들리는 상태를 결정 후회(decisional regret)라고 부릅니다. 연구자들이 반복해서 관찰한 사실은, 후회의 크기가 결과의 나쁨보다 결정 과정에 대한 기억에 더 크게 좌우된다는 점입니다. 충분히 묻고, 설명을 이해하고, 스스로 참여해 고른 결정은 결과가 나빴어도 후회로 덜 남습니다. 반대로 급하게 떠밀려 정한 결정은 결과가 나쁘지 않았어도 오래 마음에 걸립니다.

여기에 결과 편향(outcome bias)이 겹칩니다. 사람은 결과를 알고 난 뒤 그 결과에 맞춰 과거의 판단을 다시 채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상태가 나빠지면 "그때 다른 병원에 갔더라면", "그 치료를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반사실적 사고(counterfactual thinking)가 자동으로 떠오릅니다. 그러나 결정 시점에 알 수 없었던 정보를 근거로 그때의 나를 탓하는 것은 공정한 채점이 아닙니다. 좋은 결정과 좋은 결과는 늘 같이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방법은, 결정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입니다.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노트 한 장에 '오늘 들은 설명', '내가 물어본 것과 답', '선택지 두세 가지와 각각의 장단점', '내가 이걸 고른 이유'를 적어 두면 됩니다. 시간이 지나 마음이 흔들릴 때, 그 기록은 '그때 나는 알 수 있는 것을 알고 골랐다'는 증거가 되어 줍니다.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의료진과 미리 맞춰 두면 좋은 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목표입니다. 이 치료로 기대하는 것이 종양 크기를 줄이는 것인지, 증상을 덜어 지내기 편하게 하는 것인지, 시간을 버는 것인지에 따라 '성공'의 정의가 달라집니다. 둘째는 확인 시점입니다. 몇 주기 뒤에 어떤 검사로 평가할지, 그때 무엇을 보고 판단할지 미리 정해 두면 매일의 컨디션에 마음이 출렁이는 일이 줄어듭니다. 셋째는 중단 기준, 즉 어떤 상황이면 이 치료를 멈추거나 다음 방법으로 넘어갈지입니다. 시작하기 전에 정한 중단 기준은 나중에 지친 상태에서 급하게 판단하지 않도록 지켜 주는 안전장치가 됩니다.

설명 중에 나오는 숫자도 미리 뜻을 확인해 두면 좋습니다. 흔히 쓰이는 반응률(response rate)은 정해진 기준 이상으로 종양이 줄어든 사람의 비율이고, 질병조절률(disease control rate)은 줄어들거나 최소한 커지지 않고 유지된 사람까지 합한 비율입니다. 이 숫자들은 여러 사람을 모아 계산한 집단의 통계이지, 한 사람에게 그만큼 효과가 난다는 뜻이 아닙니다. 또한 '얼마나 줄었는가'와 '얼마나 오래 잘 지내는가'는 다른 값이라, 반응률만으로 치료의 가치를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숫자를 들었다면 그 자리에서 "이 수치는 어떤 환자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확인된 것인가요?"라고 물어보셔도 됩니다.

비용도 결정의 일부입니다. 표준치료 이외의 방법을 알아볼 때는 시작 전에 한 주기 비용과 전체 예상 비용, 중간에 그만두면 어떻게 정산되는지를 문서로 확인해 두는 편이 좋습니다. 가족이 감당할 수 있는 상한을 미리 정해 두는 것도 나중의 갈등을 줄여 줍니다. 효과를 강하게 장담하거나, 결정을 서두르게 만들거나, 다른 의료진과 상의하지 말라고 하는 곳은 신중하게 보셔야 합니다. 어떤 치료든 시작 전에 담당 의료진에게 알리고, 지금 받고 있는 치료와 겹치거나 부딪히는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는 절차는 빠뜨리지 않는 것이 안전합니다.

가족 사이에 의견이 갈릴 때는, 누가 옳은지를 겨루기 전에 환자 본인이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남은 시간의 길이인지, 통증 없이 지내는 것인지, 집에 있는 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상태를 지키는 것인지에 따라 같은 선택지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본인의 뜻을 한 번 말로 나누고 적어 두면, 나중에 결정을 대신 맡게 된 가족이 '내가 정한 것'이 아니라 '그분의 뜻을 전한 것'으로 기억할 수 있어 부담이 훨씬 줄어듭니다.

진료실에서 물어보기 좋은 질문을 몇 가지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이 치료로 기대하는 목표는 무엇인가요?", "효과는 언제 어떤 방법으로 확인하나요?", "어떤 상황이 되면 중단을 고려하나요?", "하지 않기로 하면 어떤 선택지가 남나요?", "지금 몸 상태로 이 치료를 견딜 수 있을까요?", "증상을 덜어 주는 치료(완화의료)와 함께 받을 수 있나요?" 결정을 하루 미루고 이 질문들의 답을 받아 오는 것만으로도, 나중에 남는 후회의 모양이 달라집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결정을 하시더라도 그 선택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한 결과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결과가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스스로를 탓하는 마음이 밀려온다면, 그 마음도 혼자 견디지 마시고 의료진이나 상담 지원을 이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것으로 개별 진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치료 방법의 선택과 중단, 병용 여부는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해 결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