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추적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은 진료실 문을 열기 전부터 마음이 분주합니다. 다행히 '결과 좋습니다, 다음에 또 봅시다'라는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주치의가 '잠깐만요, 상의드릴 게 있습니다'라고 덧붙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이야기가 병에 관한 것이 아니라, 방송 인터뷰를 해볼 생각이 있는지 또는 진행 중인 연구에 참여해 볼 의향이 있는지를 묻는 제안일 때가 있습니다. 나쁜 소식이 아니라는 안도감과 함께, 무어라 답해야 할지 몰라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기도 하는 순간입니다.
먼저 이 두 가지는 성격이 전혀 다른 제안입니다. 임상연구(clinical research) 참여는 의학적 절차이고, 방송·언론 인터뷰는 의학과 무관한 개인의 사회적 활동입니다. 연구 참여는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의 심의를 거친 계획서에 따라 진행되며, 참여자에게는 연구의 목적·기간·절차·예상되는 이익과 불편·개인정보 보호 방법을 적은 설명문과 동의서(informed consent)가 반드시 제공됩니다. 반면 방송 출연은 병원의 윤리 심의 대상이 아닌 경우가 많고, 제작진과 출연자 사이의 문제로 남습니다. 같은 진료실에서 같은 분이 권했더라도 두 제안은 따로 판단하는 것이 좋습니다.
연구라고 해서 모두 새로운 약을 시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받은 치료의 경과를 기록으로 모으는 관찰연구·등록연구, 남은 조직이나 혈액 검체와 진료 기록을 익명화해 분석하는 연구, 설문지에 답하는 삶의 질 연구처럼 몸에 새로 무언가를 시도하지 않는 연구도 많습니다. 반대로 새로운 약제나 검사 방법을 실제로 적용해 보는 개입연구는 추가 방문, 추가 채혈,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의 가능성이 함께 따라옵니다. 그래서 '연구에 참여하시겠어요'라는 한 문장만 듣고 판단하기보다, 어떤 종류의 연구인지부터 되묻는 것이 첫 단계입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자발성입니다. 연구 참여는 언제든 거절할 수 있고, 일단 동의했더라도 이유를 대지 않고 도중에 철회할 수 있으며, 거절이나 철회가 기존 치료의 내용이나 진료 관계에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 동의서에 명시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실제 진료실에서는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제안하는 사람이 내 치료를 맡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거절하면 미움을 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이때는 그 자리에서 결론을 내지 않아도 됩니다. '설명문을 집에 가져가서 가족과 상의한 뒤 다음 진료 때 말씀드려도 될까요'라는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방송이나 신문 인터뷰 제안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살펴야 합니다. 젊은 나이에 진행된 병기로 진단받고도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지내는 분에게는 '다른 환자에게 희망이 될 것'이라는 선의의 권유가 자주 옵니다. 그 마음은 고맙지만, 한 번 공개된 얼굴·목소리·이름·직장·병기 정보는 편집본이 방영된 뒤 인터넷에 오래 남습니다. 편집 권한은 제작진에게 있어 내가 말한 맥락과 다르게 다듬어질 수 있고, 가족과 직장 동료가 나의 병을 알게 되는 범위도 함께 달라집니다. 보험 가입, 채용, 인간관계처럼 예상하지 못한 곳까지 영향이 미칠 수 있으므로 신중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수락하기로 마음이 기울었다면 사전에 확인해 둘 것들이 있습니다. 촬영·인터뷰의 목적과 방영 매체, 얼굴 모자이크와 음성 변조 여부, 실명 대신 가명 사용이 가능한지, 촬영본이 다른 프로그램이나 홍보물로 다시 쓰일 수 있는지, 방영 후에 온라인 다시보기와 클립 영상이 얼마나 오래 남는지, 문제가 생겼을 때 연락할 담당자가 누구인지를 서면으로 남겨 두는 편이 좋습니다. 이런 조건이 정리되지 않은 채 '좋은 취지'만으로 진행하면,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도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거절은 무례한 일이 아닙니다. '말주변이 없어서요', '조용히 지내고 싶습니다', '가족이 원하지 않습니다'처럼 짧은 이유 하나면 충분하고, 사실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좋은 경과를 보이는 환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의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도움이 되고 싶지만 노출은 부담스럽다면, 익명으로 참여하는 설문연구나 검체·기록 제공처럼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방식이 있는지 물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덧붙여, 정기 추적검사 일정은 휴가철이나 개인 사정에 맞춰 어느 정도 조정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검사 간격은 병의 종류와 이전 치료 내용에 따라 정해진 이유가 있으므로, 임의로 미루거나 크게 당기기보다 진료 예약을 조정할 때 진료과에 문의해 함께 정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병기가 진행된 상태로 진단받았더라도 사람마다 경과는 매우 다양하며, 한 사람의 좋은 경과가 다른 사람의 결과를 예측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방송에서 만나는 한 사람의 이야기는 위로가 될 수는 있어도 기준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내용이며, 개인의 진단·치료·연구 참여 여부에 대한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연구 동의서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검진 일정 조정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