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도 멀리하고, 술도 오래전에 끊고,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하고, 맵고 짠 음식을 피하며 소식해 왔는데도 암이라는 진단을 받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처음 밀려오는 감정은 슬픔보다 '분노'와 '억울함'인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규칙을 다 지켰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라는 물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며, 결코 마음이 약해서 드는 감정이 아닙니다.
사람은 대개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라온다'는 믿음 속에서 살아갑니다. 몸을 성실히 관리해 온 사람일수록 그 믿음이 단단하기 때문에, 진단은 마치 지켜온 약속이 배신당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 배신감과 분노는 상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적응 반응)의 한 단계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화가 나는 것은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며 마음이 그것을 소화하려 애쓰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의학적으로 보면, 건강한 생활습관은 암의 위험을 '낮추는' 것이지 '0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암은 오랜 시간에 걸쳐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변화가 쌓여 생기며, 그 과정에는 나이 자체, 우연히 생기는 유전자 변화처럼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이 큰 몫을 차지합니다. 실제로 대장암(colorectal cancer)을 비롯한 여러 암은 뚜렷한 원인이나 가족력 없이도 생길 수 있습니다. 부모나 조부모가 오래 사신 장수 집안이라고 해서 특정 암이 비켜 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리해 봐야 소용없었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습니다. 꾸준히 다져 온 체력과 생활 습관은 수술과 항암 같은 치료를 견디고 회복하는 힘, 그리고 합병증을 줄이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됩니다. 지난 노력은 헛되지 않았고, 앞으로의 치료 여정에서도 든든한 밑천이 됩니다.
분노와 억울함은 눌러 담기보다 안전하게 흘려보내는 편이 낫습니다. 신뢰하는 사람에게 털어놓거나, 글로 적어 보거나, 같은 경험을 지나온 환우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많은 분이 이 감정의 파도를 지나면서 "이렇게 된 이상 더 잘 살아내 보자"는 마음으로 옮겨 가곤 합니다. 다만 그 전환을 서두르거나 억지로 밝은 척할 필요는 없습니다. 화가 날 때는 화를 내도 괜찮습니다.
만약 분노나 우울, 잠 못 이루는 날들이 몇 주 이상 이어지고 일상과 식사, 치료 일정에까지 지장을 준다면, 그것은 마음이 도움을 청하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담당 의료진이나 정신건강의학과, 암 심리상담(정신종양) 서비스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좋습니다. 감정을 돌보는 일도 치료의 엄연한 한 부분입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것으로 개별적인 진단이나 진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몸과 마음의 증상에 대해서는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