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거나 뜨개질을 하거나 글씨를 쓰는 것처럼 손끝을 섬세하게 쓰는 일을 하다 보면, 예전 같지 않게 손에 힘이 빠지고 붓이나 연필이 자꾸 미끄러지는 것을 느끼는 분들이 있습니다. 손을 쓰는 일은 단순히 근육의 힘만이 아니라, 손끝의 촉각(감각)과 그 감각을 바탕으로 한 미세한 조절이 함께 어우러져야 매끄럽게 됩니다. 그래서 힘이나 감각 어느 한쪽만 조금 달라져도 손끝이 서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암 치료를 받는 동안 손의 힘과 섬세함이 떨어지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겹쳐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일부 항암제는 손발의 말초신경에 영향을 주어 말초신경병증(peripheral neuropathy)을 일으킵니다. 이때 손끝이 저리거나 감각이 둔해지고, 물건을 쥐는 힘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또 치료 중 활동량이 줄고 잘 못 먹으면 근육이 빠지는 근감소(muscle loss)가 생기고, 전반적인 피로(fatigue)까지 겹치면 같은 일을 해도 손에 힘이 덜 들어갑니다. 스테로이드를 오래 사용한 경우에도 근력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서서히, 그리고 양쪽 손에 비슷하게 나타나는 감각·근력 변화는 치료와 관련해 비교적 흔한 편입니다. 다만 구별해야 할 신호도 있습니다. 갑자기 한쪽 손이나 팔에만 힘이 빠지거나, 말이 어눌해지고 한쪽 얼굴이 처지거나, 손이 심하게 떨리는 변화가 생기면 이는 신경학적 응급일 수 있으므로 곧바로 의료진에게 알리거나 응급실을 찾아야 합니다.
손을 쓰는 즐거움을 무리 없이 이어가는 작은 방법들도 있습니다. 붓이나 펜의 손잡이를 두껍게 감싸 잡기 쉽게 하고, 한 번에 오래 하기보다 짧게 자주 쉬어 가며 하세요. 시작 전 손을 가볍게 스트레칭하거나 따뜻하게 데우면 한결 부드러워집니다. 감각이 둔한 손은 뜨거운 것을 다룰 때 화상을 알아채기 어려우니 특히 조심하고, 미끄러운 도구는 미끄럼 방지 매트 위에서 다루면 안전합니다. 손의 근력과 소근육을 되살리는 운동은 재활의학과나 작업치료(occupational therapy) 상담을 받으면 내 상태에 맞게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손 저림이나 힘 빠짐이 단추 끼우기·젓가락질·글씨 쓰기 같은 일상에 지장을 줄 정도라면 참고 넘기지 마세요. 의료진과 상의하면 항암제의 용량을 조절하거나 다른 방법을 함께 찾아볼 수 있습니다. 완성한 그림이 조금 삐뚤고 물감이 번졌더라도, 그 손으로 끝까지 마쳤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값진 일입니다.
이 글은 이해를 돕기 위한 일반적인 정보이며 개인의 진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증상의 원인과 대처는 사람마다 다르므로,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