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질 수술이라고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떼어낸 조직에서 흑색종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비는 기분이라고들 한다. 항문이나 직장 쪽에 생기는 흑색종은 흔치 않은 데다, 피부에 까만 점으로 보이는 흑색종과 달리 잘 안 보이는 자리에 숨어 있어서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본인 잘못이 아니다. 미리 알아챌 방법이 마땅치 않은 병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병변 크기가 작고, 조직 안으로 파고든 깊이가 얕을수록 상황이 유리한 건 맞다. 그렇다고 점만 떼면 끝나는 건 아니어서, 주변에 멜라닌세포가 남아 있다는 소견이 붙으면 그 부분을 어떻게 정리할지 한 번 더 따져보게 된다. 의료진이 영상검사와 내시경, 피검사를 줄줄이 잡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른 데로 번지지는 않았는지, 떼어낸 자리 경계가 깨끗한지를 눈으로 확인해야 다음 계획이 선다.
"전이는 없다"는 말과 "항암을 안 한다"는 말은 사실 다른 층위의 이야기다. 멀리 퍼진 흔적이 없으면 곧바로 강한 항암제를 쓰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치료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지금 단계에서 굳이 몸을 더 힘들게 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 가깝다. 대신 정해진 간격으로 CT나 내시경을 반복하면서 변화를 살핀다. 흑색종은 추적 관찰 자체가 하나의 치료 전략이라고 봐도 좋다.
그래서 "나는 어느 과로 가야 하나" 하는 고민이 생긴다. 수술은 외과에서 했더라도, 흑색종처럼 전신을 봐야 하는 암은 종양내과가 전체 그림을 잡아주는 경우가 많다. 갑상선 수술 같은 다른 일정이 겹쳐 있다면 그 사실을 양쪽 진료실에 꼭 알려두는 게 좋다. 검사 순서나 약 조정에서 서로 맞물리는 부분이 있어서, 환자 입장에서 정보를 한데 모아 전달해 주는 것만으로도 진료가 훨씬 매끄러워진다.
막상 다음 검사까지 몇 달씩 비어 있으면 그 사이가 제일 길고 무겁게 느껴진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그 시간을 견디는 게 어쩌면 치료보다 더 힘들 수 있다. 궁금한 게 떠오를 때마다 메모해 뒀다가 진료 때 한 번에 묻고, 검사지에 적힌 숫자와 단어를 의료진에게 직접 풀어 달라고 부탁하는 편이 혼자 검색하며 불안을 키우는 것보다 낫다.
여기 적은 내용은 일반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고, 실제 치료 방향은 본인 조직검사 결과와 영상 소견을 직접 본 담당 의료진과 상의해서 정하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