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를 마치고 몇 해가 지난 뒤, 오랜만에 환우 커뮤니티에 들어가 예전에 쓴 글을 다시 열어 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때 댓글로 서로를 다독여 주던 이름들을 눌러 보면 '탈퇴한 회원'이라고 뜨거나, 몇 해째 글이 멈춰 있거나, 마지막 글이 '많이 안 좋아지셨다'는 소식인 경우가 있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가슴이 먹먹해지고, 이유 없이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이런 마음은 나약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시기를 같은 두려움으로 통과한 사람들 사이에 실제로 관계가 있었다는 증거에 가깝습니다.

먼저 알아두면 도움이 되는 개념이 '생존자 죄책감(survivor's guilt)'입니다.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나는 왜 남았을까', '내가 더 나은 사람이어서가 아닌데'라는 미안함이 드는 마음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결과에 이유를 붙이려는 성질이 있어서, 비슷한 진단·비슷한 치료를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 결과가 갈릴 때 그 차이를 설명할 근거를 자기 안에서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암의 경과는 종양의 생물학적 성질, 발견 시점, 몸의 상태, 치료 반응 등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요소가 크게 작용합니다. 누군가의 회복이 '더 열심히 해서'가 아니듯, 누군가의 악화도 '덜 노력해서'가 아닙니다.

또 하나는 상실이 겹겹이 쌓이는 '누적 상실(cumulative loss)'입니다. 환우 모임에서는 짧은 기간에 여러 사람의 소식을 연달아 듣게 되고, 한 사람을 충분히 애도하기 전에 다음 소식이 도착합니다. 게다가 온라인에서 만난 사이는 주변에서 그 슬픔의 무게를 잘 알아주지 않아, 마음 놓고 슬퍼할 자리조차 없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이런 애도를 '인정받지 못한 애도(disenfranchised grief)'라고 부릅니다. 슬픔이 정당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슬퍼할 자리가 마련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자연스럽게 거리를 둡니다. 단체 대화방을 나가고, 커뮤니티에는 가끔 '잘 지낸다'는 안부만 남깁니다. 이런 회피는 스스로를 지키려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습니다. 다만 완전히 끊어 버리면, 정작 내가 힘들 때 마음을 털어놓을 곳까지 함께 사라질 수 있습니다. 전부 끊거나 전부 감당하는 두 갈래 대신, 노출을 조절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접속 시간을 정해 두기, 부고나 악화 소식이 많이 오가는 게시판은 피하고 회복·일상 이야기가 오가는 곳만 보기, 정기검진을 앞둔 시기에는 잠시 쉬기 같은 방식입니다.

쌓인 슬픔을 흘려보내는 데에는 작은 의식이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기억에 남는 분들의 이름이나 별명을 수첩에 적어 두기, 짧은 편지를 써서 부치지 않고 보관하기, 기일이나 진단받은 달에 잠깐 조용한 시간을 갖기 같은 것들입니다. 반대로 자신의 생존 소식을 가끔 남기는 일도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막 진단을 받고 검색창 앞에서 무서워하는 누군가에게는, 몇 해째 잘 지내고 있다는 한 줄이 통계보다 큰 위로가 됩니다. 다만 이는 의무가 아니며, 쓰지 않기로 하는 것도 똑같이 존중받아야 할 선택입니다.

다음과 같은 신호가 있다면 혼자 견디기보다 도움을 받는 편이 좋습니다. 2주 이상 이어지는 깊은 무기력이나 흥미 상실, 잠들기 어렵거나 새벽에 자꾸 깨는 일이 반복될 때, 식사와 일상생활이 눈에 띄게 무너질 때, 검진을 앞두고 일상이 어려울 만큼 불안이 커질 때(흔히 '검사 불안'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살아 있는 것이 미안하다는 생각이 자주 떠오를 때입니다. 특히 죽음에 대한 생각이 반복된다면 즉시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진료받는 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암센터의 심리상담·사회복지팀,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 그리고 국내 자살예방상담전화(109)나 정신건강 상담전화(1577-0199) 같은 창구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오래 살아남은 사람의 마음을 돌보는 일도 치료의 한 부분입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를 전하기 위한 것으로, 개인의 진단이나 치료, 심리 상태에 대한 판단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몸이나 마음에 불편한 변화가 있다면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