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처럼 큰 수술을 무사히 넘기고 회복도 순조롭다는 말을 들으면 온 가족이 안도합니다. 그런데 정작 곁을 지키는 보호자가 환자에게서 날카로운 말과 분노를 되받으며 마음을 다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환자에게도 암은 처음이지만, 간병하는 가족에게도 암 간병은 처음입니다. '왜 나에게 이렇게까지 하실까' 하는 서운함과 억울함은 결코 이상한 감정이 아닙니다.

중병을 앓는 사람의 분노가 유독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향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이나 무력감을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대상'에게 쏟아내는 현상을 이야기합니다. 병 앞에서 느끼는 통제력 상실, 죽음에 대한 공포, 남에게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수치심 같은 감정은 낯선 사람보다 나를 떠나지 않을 것 같은 가족에게 더 쉽게 터져 나옵니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사랑하고 믿는 사람이 가장 큰 화살을 맞기도 합니다.

또한 질병 자체가 사람의 감정과 언행을 바꾸기도 합니다. 통증, 수면 부족, 약물의 영향, 대사의 변화는 짜증과 충동을 조절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특히 큰 수술 뒤나 고령의 환자에게는 일시적으로 사고와 감정이 혼란스러워지는 섬망(delirium)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평소와 확연히 다른 성격 변화나 갑작스러운 혼란, 밤낮이 바뀐 흥분이 보인다면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라 몸의 신호일 수 있으니 의료진에게 알려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배경을 이해한다고 해서 상처받은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모진 말을 무조건 견뎌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간병하는 사람의 고통도 환자의 고통만큼 진짜입니다. 최선을 다하는데도 '제대로 못 한다'는 비난을 반복해서 들으면 누구라도 지치고 무너집니다.

그래서 보호자 자신의 건강을 살피는 일이 먼저입니다. 잠이 오지 않고, 입맛이 없고, 늘 눈물이 나거나, 아무 의욕이 없고, '내가 먼저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이 이어진다면 이는 돌봄 소진(caregiver burnout)과 우울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나를 돌보는 일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오래 곁을 지키기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현실적으로는 몇 가지가 도움이 됩니다. 첫째, 상처 주는 말에 대해 부드럽지만 분명하게 선을 그어도 됩니다. 둘째, 간병인이나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돌봄을 위한 선택이며 결코 실패가 아닙니다. 셋째, 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완화의료팀·사회복지팀에 도움을 청할 수 있고, 환자의 불안이나 감정 조절 문제도 치료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넷째, 하루 몇 시간이라도 나만의 숨 쉴 시간을 확보하고, 같은 처지의 가족들과 마음을 나누는 것도 큰 힘이 됩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를 위한 것으로 의학적 진단이나 진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환자의 갑작스러운 변화나 보호자 자신의 건강이 염려된다면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