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수술을 받은 뒤에도 배의 통증이 사라지지 않아 여러 병원에서 CT를 반복해 찍었는데도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안도보다 허탈함이 앞설 때가 있습니다. 유착(adhesion), 장폐색(bowel obstruction), 문합부 누출(anastomotic leak)처럼 눈에 보이는 원인이 모두 배제되었는데도 통증은 그대로라면, 담당 의사는 '통증의학과(pain medicine)로 진료를 옮겨보자'고 권하기도 합니다. 이 말이 마치 원점으로 돌아가라는 뜻처럼 들려 마음이 무너질 수 있지만, 실제 의미는 조금 다릅니다.

먼저 알아둘 점은, 검사에서 구조적 원인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통증이 '없는' 것도, '기분 탓'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수술 과정에서 배 안의 신경이 자극받거나 눌리면 신경병성 통증(neuropathic pain)이 생길 수 있고, 장 같은 내부 장기에서 오는 내장통(visceral pain)은 CT에 병변으로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통증이 오래 지속되면 신경계가 아픔에 예민해지는 중추감작(central sensitization)이 일어나, 작은 자극에도 큰 통증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즉 '원인이 안 보이는 통증'은 드문 일이 아니라 잘 알려진 현상입니다.

통증의학과는 이렇게 원인 병소를 도려내는 대신, 통증 자체를 하나의 치료 대상으로 삼는 진료과입니다. 마약성 패치나 먹는 진통제 외에도 신경병성 통증에 쓰는 약, 신경차단술(nerve block)이나 국소 시술, 재활·심리적 접근을 여러 방법으로 조합하는 '다중 접근'을 시도합니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와 상의해 같은 병원 안에서 연결하면 그동안의 검사 기록과 수술 소견이 그대로 공유되므로,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통증이 갑자기 심해지면서 심한 구토가 반복되거나, 아무것도 못 먹고 계속 토하거나, 배가 딱딱하게 부어오르고 열이 난다면 이는 별개의 응급 신호일 수 있으니 응급실 진료를 미루지 마세요. 평소에는 통증이 언제·어디가·얼마나 아픈지, 무엇을 하면 나아지고 나빠지는지를 간단히 적어 두면 통증의학과 진료에서 큰 도움이 됩니다.

오래 잡히지 않는 통증은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지치게 합니다. '다시 시작'처럼 느껴지는 진료과 이동이 사실은 통증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새로운 팀을 만나는 과정일 수 있다는 점을, 지친 순간에 한 번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것으로 개별 진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통증의 원인과 치료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므로,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해 결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