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진단을 받은 뒤 많은 분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질문은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입니다. 예전에 먹은 음식, 오래 쌓인 스트레스, 늦게 잠든 밤들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스스로를 탓하게 됩니다. 이런 자책은 이상한 반응이 아닙니다. 갑작스러운 병 앞에서 '원인'을 찾으면 다시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 즉 혼란 속에서 질서를 되찾으려는 자연스러운 심리에서 비롯됩니다.

하지만 오늘날 의학이 이해하는 암의 출발점은 개인의 '잘못'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암은 우리 몸의 세포가 분열하면서 유전자(DNA)에 생기는 변이(mutation)가 오랜 시간 여러 겹 쌓일 때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 변이의 상당수는 세포가 정상적으로 복제되는 과정에서 우연히 생기는 '복제 오류'입니다. 아무리 조심해도 세포 분열은 매일 일어나고, 그때마다 확률적으로 실수가 끼어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암의 원인 가운데 상당 부분을 '운(chance)'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물론 흡연, 과도한 음주, 비만, 일부 감염(예: B형·C형 간염, 헬리코박터), 방사선, 특정 직업적 노출처럼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이런 것들은 '위험인자(risk factor)'이지 한 사람의 암을 콕 집어 설명하는 '원인'은 아닙니다. 위험인자는 집단에서 확률을 조금 올리거나 내릴 뿐이어서, 건강하게 살아온 사람도 암에 걸리고 위험한 습관을 가진 사람도 걸리지 않는 일이 흔합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세포 분열이 반복되며 변이가 쌓이므로, 고령 자체가 가장 큰 위험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건 내 탓'이라며 특정 행동 하나에 책임을 지우는 것은 과학적으로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분들은 암을 '교통사고 같은 것'에 빗대기도 합니다. 조심해서 운전해도 사고가 날 수 있는 것처럼, 최선을 다해도 통제 밖의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비유가 모든 것을 설명하진 못하지만, 지나친 자책을 내려놓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자책이 오래가면 마음뿐 아니라 치료에도 영향을 줍니다. 죄책감에 사로잡히면 우울과 불안이 깊어지고, '이미 늦었다'는 생각에 치료 의지나 일상 관리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과거를 파고들기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초점을 옮기는 편이 낫습니다. 금연·절주·규칙적인 활동·균형 잡힌 식사 같은 생활 습관은 전반적인 건강과 회복, 그리고 일부 재발 위험을 낮추는 데 의미가 있지만, 이는 '벌'이 아니라 '나를 돌보는 방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잠·식사·기분을 계속 흔든다면 혼자 견디지 마세요. 담당 의료진, 정신건강의학과, 또는 심리상담·환우 모임에 마음을 나누는 것도 치료의 한 부분입니다. 원인을 완벽히 밝히는 일보다, 지금의 나를 어떻게 돌볼지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위한 것으로 개별 진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상태와 치료·생활 관리에 대해서는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